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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말해주다시피, 이 책은 병자호란에 대한 책이고, 또한 병자호란에서 홍타이지의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를 조명하는 책이다. 서두에서 밝히듯, 저자는 병자호란에 대한 일반적인 서사가 당대 조선 인재들의 무능함, 외교 실패가 최악의 인재人災를 초래했다고 설명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이를 반박함과 동시에, 실제 전쟁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갔고 무엇이 그 원인이었으며 어떻게 끝났는지를 참신한 시각에서 사료 분석과 함께 제시한다. 제목의 의미와 함께 그 원인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병자호란은 홍타이지의 칭제 욕구를 위한 싸움이었다.



이야기는 정묘호란 때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과의 전쟁 끝에 형제의 맹을 맺는 것으로 전쟁을 끝낸 홍타이지는 병자년 사월에 삼궤구고두를 포함한 칭제 의식을 치뤘고, 정묘호란 때의 맹약과는 달리 '조선 정복'이라는 위업을 몽고 통일, 옥새 획득과 함께 칭제를 위한 업적으로 이야기한다. (신하들은 애초부터 조선 정복을 제외한 두 가지 업적만을 이야기했지만 말이다.) 또한 당시 즉위식에 있었던 조선의 사신 둘에게 자신에게 황제에 대한 예우인 삼궤구고두의 예를 치르라고 명한다. 물론, 당시 조선과 청의 관계를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그럴 순 없었다. 아마 당시 명의 최대조공국이었던 조선의 인정이 있어야 비로소 칭제를 할 수 있다고 여긴 탓인지 아닌지 확실하진 않지만, 이렇게 칭제 의식은 반쯤 파토가 나버렸다. 그러니 홍타이지의 조선 침략 의지는 여러모로 확고했을 터다.



이 칭제 의식이라는 걸 염두하고 보면, 홍타이지가 병자호란의 책임을 조선에게 돌리기 위해 명분을 만들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당시 명나라가 망할 것이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홍타이지조차!) 특히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명군도 여전히 있던 마당에 명과의 관계를 끊고 청의 신하가 되라고 하는 요구는 정묘호란의 맹약을 깰 뿐 아니라 순수한 역학적 관계로도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이를 거부하자, 홍타이지는 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위험할 수 있으니 경계를 철저히 하라는 조선군 내부문서인 '절화교서'를 내세우며 조선이 맹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다고 고한다. (칭제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자신도 억지였던 걸 안 탓인지 언급하진 않는다.) 어쨌든, 이것은 신하를 복속하기 위한 의로운 전쟁인 것이다. 정묘재란부터 병자호란 당시까지의 외교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고, 급속도로 악화된 것은 이 병자년의 칭제 의식과 홍타이지의 엄포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조선의 외교 실패를 원인으로 들 수는 없다.



따라서 홍타이지가 직접 군사를 이끈 것이나, 병자호란을 위해 가용 전력을 거의 전부 투입한 것 등 역시 설명이 된다. 병자호란은 홍타이지에게 있어 명과의 전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전쟁을 이기기 위해 최대한의 수를 써야 했고, 여기서 그의 전략이 발휘된다. 빠른 서울 기습과 군사 운용, 남한산성 포위, 강화도 함락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다만 전쟁의 패배가 조선군의 대비 부족보다는 수싸움에서의 패배에서 말미암았다는 것만을 언급하고자 하여 적는다. 결과가 달라지는 건 없지만 말이다.



병자호란의 결말이 상당히 흥미로운데, 정축년 정월 16일을 기점으로 홍타이지의 태도가 급변하였다. 원래는 남한산성을 포위한 채 고사시키는 것까지 각오하고 극단적으로 긴 장기전까지 염두하고 있었던 그가, 돌연 태도를 바꿔 조선 측의 타협을 수용하고 삼궤구고두의 예와 중단된 칭제 의식(보다시피, 홍타이지의 목적은 처음부터 여기에 있긴 했지만)을 이어 하는 것으로 전쟁을 종결지은 것이다. 그리고 의식이 끝나고 이틀 후 곧바로 황급히 귀국한 것까지. 분명 무슨 일이 생겼음에 분명하고, 여기서 저자는 마마(천연두) 발발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정묘호란 당시에도 조선에서의 마마 문제는 장수들의 급작스러운 귀국을 초래했고, 이번에도 역시 그 두려움으로 인해 빠른 귀국을 택했다는 것이다. 정월 16일에 보호토 휘하 니루에 마마 환자가 발생하였고, 홍타이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장수들은 마마를 앓은 적이 없었다. 피두에 들어간지 2주 정도가 흘렀을 때, 조선이 항복하고 예를 치뤘고, 그는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고 조선의 관원들과의 어떠한 근거리 접촉도 기피하였다.



이 결말이 일종의 무상감을 안겨주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약 세 장에 걸쳐 홍타이지의 조선군에 대한 전략의 승리를 분석하던 책이,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로 인해 원래 목표했던 것까지는 이루지 못하고 귀국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물론 꼭 그런 것만은 아니긴 하다. 홍타이지의 승리 역시 상당수가 당시 운 좋은 자연현상(강물의 이른 동결, 강화도의 조류 변화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아 일궈낸 것이긴 하니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다른 요인들에 비해 마마 발발은 예측도 할 수 없을 뿐더러 몸을 피하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었던 것이지 않던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는 법이라는, 약간은 지겨운 말들까지 떠오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