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라고 하네요.
나가사키 일본식 개인 저택에서 사는 50대 남자. 직업은 기상관측소에서 일하는, 조용조용하고 단조롭게 사는 남자.
어느 날, 집에서 주스, 사과,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들이 조금씩 무언가 달라져 있는 걸 눈치 채게 됩니다.
'어? 이상하네? 누가 훔쳐먹는 건가?'
결국 집 안에 CCTV를 설치한 50대 남.
그리고 기상관측소로 출근해서 원격 모니터로 자신의 거실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봅니다.
그때 마침 화면에 휙 나타났다 쏜살같이 사라지는 어느 50대 여성.
'헉. 쉬바 저거 뭐야!!'
.
결국 남자는 경찰에 신고하고, 여자는 그날도 어김없이 자택에서 뭐 이것저것 꺼내먹고, 거실에서 뒹굴거리다
현장에서 체포됩니다.
근데 재밌는 건, 이 소설이, 여자가 집 안에 숨어 들어서 몰래 생활하는 거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여자가 잡히고 나자, 아... 여태까지 함께 살았던, 어떻게 보면 기묘한 동거를 했던 여인이 사라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남자는 '묘한 고독감'을 느낍니다.
혹시 독갤분들 중에 아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파이란>에서 나왔던 그런 감정과 약간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실제로 남자와 여자는 같이 만나서 밥을 먹은 적도 없고, 여자는 그저 남자 집에 몰래 숨어 들어, 다락방 속에서 은신하며
살았던 존재인데, 평생을 독신으로 쓸쓸하게 늙어갔던 50대 남은, 이 여자가 잡혀가자 무언가 모를 허전함을 느끼는데
그 심리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굉장히 탁월하게 느껴졌어요.
근데 다만 아쉬운 건, 마지막에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허무감을 좀 말랑말랑한 느낌으로 부드럽게 결말을 맺었으면 좋았을 텐데
여자가 남의 집에 몰래 숨어살게 된 사연.. 뭐 빈곤 문제, 실업 문제, 여자의 좌파 정당 가입 사연 등등 뭐 이런 걸로 하면서
세상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투쟁적 논조로 끝내서 그건 좀 아쉬웠습니다.
프랑스에서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기에 한 번 사서 읽어봤는데
굉장히 재밌게 술술 읽혔고요.
재밌는 건 소재 자체만 보면 영화 기생충이랑 비슷한데 (참고로 이 소설은 2012년인가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영화에서는 숨어 사는 기우네 가족들에 포커스를 두며 스릴감, 그 감정에 포커스를 두잖아요.
소설은 여자가 잡혀들어가고 나서 남자가 느끼는 허무함과, 남의 집에 들어가서 살수밖에 없었던 여자의 사연을 차분히 조명하면서
잔잔한 울림을 줘요. 이런 부분에서는 영화가 따라갈 수 없는 문학소설이 가진 강점이라고 해야 되나요.
여하간 에릭 파이의 나가사키 추천합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호기심(여자의 정체가 탄로 나기 전) >>> 허전함(남자의 심리를 묘사할 때) >>> 먹먹함(외롭지만 그렇다고 선뜻 여자한테
다가설 수도 없고, 여자 입장에서도 남자와 연이 이어질 수 없을 때) >>> 씁쓸함 (실업 문제, 빈곤 문제로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살게 된 여자의 기구한 사연과
일본에 만연한 1인 가구의 문제를 조명할 때) 으로 감정의 이동을 느꼈어요.
아 팻맨 마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