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글은 좀더 공식적인 어조로 씀.  원본은 버린지 오래고 갑자기 삘받아 기억나는 대로 쓰다보니 대충이지만 어쨌든 주요 논지는 완전히 같음. 


군대에서 읽고 독후감 써서 보여줬는데 이게 무슨 독후감이냐  사회 비평하냐? 라고, 절대 안뽑힌다고 해서 그냥 버린 글중하나.


엄마를 부탁해에 대한 감상을 적기 전, 책이 해외로 번역되어 어떤 외국인 교수가 읽고 남긴 비난을 소개하고 싶다.


김치냄새 나는 쓰레기소설.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신파극. 


다분히 인종차별적인 감정을 담은 발언을 사용한 도저히 교수라는 사람의 발언이라 느껴지지 않는 원색적인 비난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을 서슴없이 할수있었던 외국인 교수가 나는 부러웠다. 


물론, 엄마를 부탁해가 쓰레기 소설이고 그것을 시원스럽게 부탁해서 외국인 교수가 부럽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서론이 자극적인 만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공공장소인 도서관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은 수많은 사람중 한명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를 나의 엄마와 겹쳐졌기에, 나의 어머니 또한 그처럼 심한 대우를 받으면서 살아왔기에, 비단 나의 어머니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어머니라는 상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얼마나 심한 대우였는지 자각을 해서 눈물을 흘린 것이다. 반대로말하면, 


나의 어머니가 그렇지 않다면,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수많은 어머니라는 상이 책의 어머니와 판이하게 다르다면, 엄마를 부탁해는 밀리언 셀러가 아닌, 그냥 그저 그런 눈물을 짜내는 소설로 남았을 것을 그 가능성을 외국인 교수의 비평을 통해서 확인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발언을 할수있는 그 외국인 교수가 부러웠다. 보다 정확히 적자면, 엄마를 부탁해를 이해는 하되,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그러한 가정과 사회에서 자라난 그 교수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기는 커녕 엄마를 부탁해를 싸구려 신파극으로 취급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