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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욕구 중 하나는 어딘가에 소속되려는 욕구이다. 이러한 욕구가 존재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끌리기 때문이고, 둘째. 인간은 자신과 다른 인간들을 끊임없이 배척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만들어진 소속욕에 의해 인간들은 다른 인간과 함께 집단을 만든다. 이 글에서, 나는 다수의 인간이 소속되어 있는 이러한 집단을 '프레임(frame)'이라 부르려 한다.
제국주의의 발흥과 함께 세계에는 새로운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총, 균, 쇠를 통해 다른 인간들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유럽인들의 프레임과, 그들에게 압도되어 지배당하는 원주민의 프레임이 그것이다. 유럽인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프레임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려 했고,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미개하고 야만적인, 지배받아야 할 운명을 타고난 선천적인 열등 인간들이라는 인식이 유럽인들 사이에서 퍼졌다.
하지만 사실들은 그런 인식의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서유럽은 오랜 시간동안 문명의 변방이었고, 그들이 지배하는 민족에게는 분명히 주목할 만한 역사와 문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유적들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서 존재했다. 아프리카의 사막 한 복판에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었고, 중남미의 산꼭대기에는 장엄한 도시가 있었으며, 동남아의 우거진 정글에는 거대한 사원이 서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유럽인들의 프레임을 약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프레임의 약화는 곧 소속할 곳이 사라질 수도 있음을 의미했기에, 유럽인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원주민들의 과거를 지우고, 그 자리에 그들이 가져온 '선진 문명'을 대신 가져다 놓았다. 나아가서는 열등한 민족의 역사나 문화 따위는 탐구할 가치조차 없다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그들의 불안한 프레임을 보강해줄 만한, 스스로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정보들과 주장들을 끌어 모으는 데 혈안이 되었다. 특히 교수나 박사 따위의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들의 말과 글은 더욱 인기가 좋았다. 많은 상황에서 프레임의 재료가 되는 것은 어떤 정보의 정확도가 아닌, 그 정보의 권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의 '합리적 학문'인 우생학, 골상학 등에 의해 열등 인종, 야만인들로 매도되었다.
<제국의 전초 기지>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적어도 유능하고
열심히 일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환상이다. (...)
인도 주재 영국 관리들은 업무를 경쟁적이고 능률적으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영국에 있는 한 작은 마을의 우체국장보다도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실제적인 행정 업무는 대부분 원주민 하급 공무원들이 처리한다.
이렇게 지배자가 된 유럽인들은, 역설적이게도 원주민들에 의해 가치를 부여받았다. 원주민들 없이 그들은 그저 덥고 낙후된 제국의 변방에서, 시원찮은 봉급을 받아가며 대충대충 일하는 노동자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더욱 원주민들을 부려먹고, 때리고, 자신들과 철저히 격리시켰다. 유럽인들의 프레임 강화는 원주민의 존재와 그들에 대한 지배를 통해 이루어졌고, 또 그것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즉 영국인은 반(反)영국적이었고 인도인은 친(親)영국적이었다.
의사 베라스와미는 영국인들에 대해 광적일 정도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존경심은 영국인들이 그에게 아무리 경멸을 퍼부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인도인이니만큼 당연히 하위 계층이며, 타락한 인종이라고 생각했다.
원주민들은 어땠는가? 모순적이게도 그들은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프레임 안에서 일종의 소속감을 느끼고, 스스로 그 프레임을 강화했다. 노동과 착취 속에서 자신들이 정복당하고 지배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자신들을 야만에서 문명으로 이끌어주는(사실은 전혀 이끌 생각이 없는데도!) 유럽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존경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유럽인-원주민 프레임은 더욱 강화되었다.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서로에게 종속되어버렸다. 유럽인들은 그들의 유일한 지배 대상인 원주민들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그들을 더욱 가혹하게 대하며 길들이려 했다. 마찬가지로 원주민들은 그들의 인자한 주인인 유럽인들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기에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충성을 다했다. 이 시점에서 유럽인들과 원주민들은 인간이 아닌 일종의 장치가 되어 버렸다.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한 쌍의 톱니바퀴처럼.
그러나 모든 백인들이 독재라는 톱니바퀴 안에 있을 때는 우정조차도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된다.
자유로운 대화는 생각할 수도 없다. (...) 자신만을 위한 생각은 허용되지 않는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사안에 대한 의견은 지엄하신 백인 나리들인 <푸카 사히브>의 법규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다.
오웰은 플로리의 입을 빌려 이러한 프레임의 경직화와 그로 인한 인간의 장치화를 경계한다. 그의 다른 저서인 <1984>를 통해 전체주의 하에서의 인간의 부속품화를 경계했듯이 말이다. 이튼스쿨에서의 다년간의 제국주의적 교육과 몇 년간의 버마 생활을 통해, 오웰은 제국주의는 결국 유럽인과 원주민 모두를 프레임의 노예로 만드는 사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리라.
오웰이 묘사한 제국주의의 시대는 결국 막을 내렸지만, 프레임의 시대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프레임들이 생겨나고, 이 때문에 셀 수 없는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성별, 인종, 나이, 종교 등의 주제들은 인간들을 각자의 프레임에 몰아넣고 서로 싸우고 헐뜯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프레임의 시대, 인간 갈등의 시대에서, 우리는 과연 노예가 아닌 자유민으로 남을 수 있을까. 그렇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답은, 바람 속에 흩날리고 있다.
이 글은 참 귀하네요 - dc App
근데 베라스와미는 다른 원주민들에 비교해봐도 두드러지게 광적인 사대주의자라서 좀
역시 조지오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