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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독붕이들. 김초엽 리뷰 전에 간단하고 짧게 재독하고 리뷰하는 거라 가볍게 읽어주길 바라. 물론 모모 자체가 가벼운 동화 느낌도 있지만ㅋㅋ
모모의 시작을 돌이켜보라.
모모가 살 수 있었던 이유를 들여다보라.
그리고 회색 신사가 나타난 이후를 살펴보라.
그들이 정말로 앗아간 게 시간인가?
한줄 요약
선의가 사라진 세계, 악의는 없는 세계, 행복이란 존재는 과연 어디에서 찾아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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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아마 중학생 때 읽었고, 굉장히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이름은 까먹었을 지언정 그 내용과 흐름은 기억하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읽기 쉬운 소설로 모모를 추천하기도 했었고.
모모를 리뷰하겠다고 생각한 건 다름이 아니라 어떤 논제에서 출발했어. 의사란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 또는 사회적 억압에 대한 내용이야.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의사도 직업이기 때문에,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분명 존중받아야 할 선이 있다'란 거지. 순화해서 표현했지만, 실제 논제가 다뤄진 곳에선 좀 더 조심스럽고 강경하게 표현됐지. 그런데 난 그걸 보면서 문득 모모가 생각나더라. 그래서 다시 간단하게 인물들 이름도 다시 확인할 겸, 내용도 조금씩 확인할 겸, 내가 떠올린 관점으로 모모를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할 겸...... 그렇게 재독했어.
결과는 이렇게 감상문을 썼으니 나름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 한줄 요약에도 적었듯, '선의'라는 관점에서 모모를 한 번 보기로 했어. 물론 모모의 주제는 분명 시간의 쓰임에 대한 얘기야. 그건 분명할 정도로 명료하지. 모모랑 호라 박사의 대화에서 다 나오잖아. 그러니 그 점은 차치하고, 선의의 관점에서 모모를 살펴보자.
선의가 무엇인지부터 정의를 내려야 되겠지? 선의는 善意라는 한자를 쓰고, 뜻 그대로 착한 의도, 착한 마음, 좋은 뜻 따위를 말해. 말 그대로 착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 말이지. 모모의 세계는 동화라서 그런 점도 있지만, 분명 선의로 충만한 세계였지. 모모가 처음 등장한 대목을 살펴보면 알 수 있어. 마을 사람들이 모모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심지어 거리낌없이 입양도 해줄 수 있다고 얘기해.(정확히는 데리고 살아주는 거지만) 하지만 모모가 끝가지 옛 유적지에 남고싶어하자 모모의 의지를 존중해주며 집을 보수해주고 먹거리를 전해줘. 아이들은 모모의 친구가 되어주고, 사람들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아무튼 모모에게 찾아가서" 고민을 해결하지. 특히 기기와 베포는 모모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고 말이야!
이렇게 선의로 충만한 세계가 1부 내내 보여졌다면, 2부에선 회색 신사가 나와. 회색 신사는 인생에 대해 불평하고 있던 이발사 푸지 씨를 찾아가. 정말 공교로운 때지.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모모에게 찾아가 고민을 해결받기 그 이전에, 아직 자신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고 선의가 작동하기 이전에 회색 신사가 찾아와. 회색 신사는 푸지 씨의 인생에 대하여 교모한 화법으로 설득하지. 마치 그 모든 선택을, 시간을, 추억을 '낭비'라는 기준 아래에 한 치의 허용 없이 모조리 치부해버린 거야. 가뜩이나 인생에 회의감을 가지던 자에게 이런 엉터리 계산을 들이미니 푸지 씨는 그대로 홀라당 넘어가버리지. 그때부터 푸지 씨는 바뀌었어.
'합리적인' 푸지 씨는 더 이상 앵무새를 키우지 않아. 어머니를 간병하지 않고 양로원으로 보냈어. 이발하러 오는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지 않고, 다리아 양도 꼭 필요할 때만 격주로 만나고, 노래, 독서, 친교 따위를 모조리 내버렸지. 어머니를 간병하던 것도, 손님들과 잡담을 나누는 것도, 다리아 양에게 꽃을 들고 가는 것도, 앵무새를 기르고, 노래하고, 저녁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친구와 만나는 그 모든 것. 선의로 움직이던 그 모든 것들이 '합리'란 이름 앞에 모조리 고개 숙이게 된 이후, 푸지 씨는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됐지.
회색 신사가 바꿔놓은 세계는 '합리적인' 세계야. 절약하고, 아끼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좀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선택하자는 거지. 그러기 위해 불필요한 것을 포기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들이 바로 '선의'로 묶을 수 있는 것들이야. 왜냐면 "선의"와 "합리적인 시간 투자"는 그리 잘 맞지 않거든. 길을 찾지 못하는 할머니를 돕기 위해 정확히 10분만 투자할 수 있어? 힘들게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를 돕는데 정확히 30분만 밀어주고 갈 거야?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데 계획표를 들여다보며 "이정도 스케쥴이면 내일 저녁 7시 반부터 네 부탁을 실행할 수 있겠는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전혀. 그럴 리가. 선의는 시간을 따지면 안 돼. 선의로부터 비롯되는 행동들은 행위 그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시간 계산 따위가 들어갈 리가 없지.
'합리'란 명목이 얼마나 손쉽게 사람들을 망가뜨리는지, 그렇게 망가진 사람들이 만든 도시의 풍경은 얼마나 쓸쓸한지. 그리고 남겨진 아이들, 아직 선의를 품고 있는 아이들에게 '합리적인' 어른이란 얼마나 차갑고 서글픈 것인지 보여줘. 아이들과 놀아주는 대신 비싼 장난감을 사줘. 아이들에게도 시간을 아껴쓰라고 해. 바쁘다고 말해. 얘기하지 않아. 아이들은 결국 강한 척하고, 이해하는 척을 하지만 울고 말아.
진짜 '합리'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합리를 너무 괴물처럼 해석한 건 아니냐고? 글쎄, 난 실제로 겪은 게 있어서 그렇게 말은 못하겠다. 우리가 '합리'란 명목 아래에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렇게 얻은 위안과 평안이 얼마나 치졸하고 조잡하기 그지없는지, 합리적으로 살아왔지만 그게 행복해지는 선택이 아니란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지. 그리고 이미 사회에서도 '가성비'라는 말 하나가 얼마나 사람을 추잡하게 만드는지 보지 않았어? 그게 그 잘난 '합리'의 말로였던 거야. 합리'만'으로는 그렇게밖에 도달할 수 없는 거지.(그렇게 가게 된 원인이 개인이냐 사회냐는 여기서 다룰 내용이 아니니 패스하자)
기기를 봐. 기기는 선의로 모모만을 위한 이야기를 지어내줄 정도였어. 하지만 기기마저 합리에 매몰되고 난 이후는 어때? 자기 작품을 표절하기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졌지. 합리에 매몰되자마자(회색 신사의 협박이 있었지만) 자기자신을 옥죄여오니, '합리적으로' 창작보다 표절을 택해버린 거야. 베포는 기기와 조금 다른 경우인데, 선의의 관점에서 베포는 해석하기가 많이 난해하더라...ㅎㅎ 하지만 분명한 건 베포도 협박에 넘어간 이후로 허리를 피면서 도로를 청소할 수 없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그로 인해 모모가 못알아보기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져. 전부 합리의 말로야.
중간에 나오는 니노의 빠른 레스토랑이나, 기기의 운전수, 모두 합리에 매몰되어버린 사람들이지. 특히 니노는 기기처럼 모모(선의)를 알고, 모모(선의)를 추억하지만, 그렇다고 모모(선의)를 선택할 힘이 없어. 삶의 관성이 너무나도 커져버린 탓이었지. 선의로 행해왔던 것에 합리를 집어넣기 시작하면, 다시 돌아가기 위해선 더 큰 노력을 들여서 선택을 해야 해. 왜냐면 선의로 행해왔을 때에 없던 후회가, 선의와 함께 따라오는 행복으로 상쇄되던 불편함들이, 합리의 조명 아래에 고개를 쳐들고 괴롭힐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선의를 택한다면, 다시 선의로 행한다면, 행복도 다시 찾아올 거야. 이 책의 결말은 그렇거든.
합리를 구원하는 건 더 큰 합리가 아닌 더 큰 선의라는 걸 모모가 보여준다고 생각해. 시간을 조금만 더 들여서, 아까워하지 않고, 그저 그 사람들과 세상과 행복을 위하여. 선의로 움직인다는 것. 그건 분명 합리적이라고 보기 힘들지.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비현실적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몰라. 특히 한국의 현대사회는 더더욱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결국 회색 신사에게 먹힌 모모의 도시와 별 다를 바 없단 생각이 들어. 선의를 비웃는 당신들이야말로 행복하냐고 하고 싶어지네ㅎㅎ
물론! 독붕이들은 합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걸 잘 알아ㅎㅎ 스스로의 선의를 위해서 책을 그렇게 구매하는 꼴들을 보면 회색 신사도 혀를 내두를 거란 걸 닥눈삼하면 누가봐도 알지ㅋㅋ 야밤에도 갤질 열심히 하면서 독린이들 도와주고 의견 교류하고, 최대한 무시하지 않고, 클린 갤 만들어가는 것들 모두 '합리'란 이름 아래에 이뤄지는 게 아니잖아? 좋아하는 마음에서, 좋은 뜻에서 비롯되는, 곧 '선의'로 행해지는 것들이지.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착하다는 건 심성이 아닌 행위의 집합으로 인해 명명되는 것이니, 독붕이들은 충분히 착하다고 할 수 있지.
부디 살아갈 그 나날들에 있어서, 합리란 기준이 완전히 필요없진 않을 거야. 취사선택을 해야 될 때는 올 것이고, 때로는 선의로 행하기엔 우리의 능력이 부족할 수 있어. 한계는 어느 때나 존재하고, 현실은 무서우리만치 혹독하며, 우리를 짓누르는 삶의 관성은 과하리만치 무거우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선의를 지키고자 하고, 선의로 행하는 것이 있다면, 난 그것들을 기꺼이 응원해줄게! 행복은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얻는 게 아니라, 따지지 않고 남겨둔 것에 찾아오는 것. 여백의 미학이 곧 행복의 미학인 셈이지ㅎㅎ 다들 행복하길 바라.
사실 이거 멋진 신세계랑 엮으려고 했었는데 멋진 신세계는 모모의 세계와는 궤가 달라서 엮을 수가 없더라ㅋㅋ
ㅇㅈ 합리는 도구에 불과한 거라서 진짜 합리는 그렇지 않다는 말은 잘못된거임 도구에 불과하니까 선의가 없으면 선하게사용되지 않는거고 - dc App
합리를 도구로 잘 쓴 게 공리주의지. 그리고 공리주의의 끝판왕이 멋진 신세계고...
너무너무 잘 읽었어. 선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흥미롭네. 교훈도 있고 유모아도 있고ㅋㅋ 각박한 세상에서 마음이 쪼금 푸근해진다...ㅎㅎ..ㅜ...
ㅋㅋㅋㅋ꺼마워
오늘 이 글 생각하면서 합리적으로 감자를 택하지 않고 행복을 위해 라면을 끓였어 ^~^
라면은 못참지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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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고민하고 있었구나ㅋㅋ 꺼마워
글 너무 잘적었네 ㄷㄷ
ㅎㅎ꺼마워잉
효율성을 위해, 혹은 그에 종속되어 만들어진 합리성이라면..그리고 모모의 배경이 통제된 관료제 사회라는걸 생각한다면, 합리성에 대한 모모의 비판은 그 시대를 가장 잘 관통하는 게 되는걸까. 관료제 이전의 동원력이 미비한 과거나, ai가 대두될 근미래, 혹은 회색 신사를 지칭할 여유가 없어지는 위기에 봉착한다면 모모가 설 자리는 없을지도 모르겠네.
따봉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