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내 사랑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모음집 [깊이에의 강요]를 읽었다.
파트리크의 작품들에서 나는 항상 엄청난 내면적 공감과 동질성을 느끼는데
이 작품은 나와 작가가 거의 동화되는듯한 황홀한 기분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읽는 내내 나는 책을 품에 꼬옥 안아 책 구절구절마다 입을 맞추고 싶은 욕구를 참아야 했다.
충동을 이기기위해서 나는 눈으로 글을 빠르게 훑어야 했다.
깊이에의 강요는 4가지 에피소드로 나누어진다(다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제목은 깊이에의 강요니까)
첫번째는 깊이가 없는 재능있는 화가의 이야기다.
그녀는 어느 평론가에게 자신의 작품이 깊이가 없음을 들키게 되고 그로 인해 끊임없이 깊이에 대해 고뇌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강렬히 소망하고 바라던 자신에게 없는 깊이를 얻는데 실패한다. 그리고 좌절감에 쌓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죽는다.
이후 깊이가 없다고 평론헌 평론가는 이런 후기를 남기며 글을 마치는데.
작품 해석에 평론가가 이전에 했던 말과 다르게 그녀의 작품은 깊이가 있고,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이에의 강요를 느끼게 한다고 평가하며 끝난다고 나온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런 뻔한 해석과 결말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였기 때문이고, 문맥에서도 그러한 의미로 쓰인 글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론가는 재능있던 화가가 몰두하고 심취한 깊이에의 집착과 강요를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평론가는 그녀의 집에서 나온 물건들에서 깊이에의 강요를 느끼고 평론했던 것이다.
나는 정말 놀랐다.
분명 이러한 글에서는 쉬운 방법이 항상 놓여있다.
그저 평론가를 무지몽매하고 무능력하면서 남의 창의적인 작품에 멍청한 소리나 해대며 빌어먹고사는 이로 만드는 방법 말이다(그것이 사실이고 현실인 부분도 있으니 쉬운 일이다).
그러나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그러한 쉬운 길로 자신의 작품을 끌고 나가지 않았다.
그저 그런 사나의 졸작으로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에 너무나 놀란 나는 위에 올린 구절을 3번이나 읽으며 내가 제대로 그 의미를 받아들였는지 확인했다.
우리는 깊이를 강요받는다. 삶이란 성취해야할 무엇으로 평가하고 재단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규칙을 만들고 법을 만들고 스펙을 쌓고 재능과 능력을 키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무한한 시간 앞에서 아주 짧은 눈의 깜빡임 정도의 순간이고 찰나이다.
그러니 그러한 것들은 망각의 동물에게 그저 한 순간의 감상이고 느낌일 뿐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른 장에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이야기가 이런 주제와 닿아있기 때문이다.
다들 꼭 읽었으면 좋겠다.
- dc official App
장바구니에 담을만한 책인것같네 ㄱㅅㄱㅅ
88쪽에 만원은 좀...
알라딘 중고로 3천원인가에 주웠음 참고하셈 ㅋ - dc App
변태
쓴이는 쥐스킨트의 에세이 사랑을 생각하다 라던가 희곡 콘트라베이스 읽으면 좋아하겠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