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9bcc427b28b77a16fb3dab004c86b6fdc843afe757eec56b87100fb30f9c1a65d308375c7e90e82bd3477a4fa0ba9091f79a8d1a8ada42139a2fd93fa



- 진화 심리학은 정말 재밌는 분야다. 이상한 방향으로(특히 정치적인 쪽에서) 오용될 수 있다거나 명백한 실험이나 검증이 힘들 수 있다는 등의 꽤나 커보이는 단점들에도 여전히 흥미로운 분야임에 틀림없다. 나 또한 그에 매료된 여러 사람 중 한 명이고 이 책 또한 그 덕분에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도 궁금하지도 않겠지만) 이 책을 만나게 된 사연은 꽤 재밌다. 저자인 폴 블룸의 전작을 재밌게 읽었다거나 신뢰할 만한 학자의 추천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교수의 예전 홈페이지를 구경하다 스스로를 번역가 겸 재야 진화 심리학자라고 말하는 이덕하 씨를 알게 되었다. 첫 인상은 여러 학문에서 재야학자들이 그렇듯 검증되지도 않은 자기만의 개똥철학을 뽐내시는 분이겠구나 였지만 그 생각은 최재천 교수를 비판하는 글을 읽고 어느 정도 호의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비판하는 지점이 평소 최재천 교수에 대한 내 생각과도 비슷했고 논리 전개도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한국 번역계 특히나 [이기적 유전자]을 대차게 까내리는 다른 글에서 번역가로서의 이덕하씨에 대한 신뢰가 생겼고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기에 이르렀다. 전중환 교수는 (아마도 진화심리학자로서) 이덕하씨에 대해 크게 긍정적인 평가는 아니었지만 또 크게 부정적인 평가라고 보기도 힘들다는 식으로 언급했다. 진화 심리학에 대해 몰이해한 학자들에 대해 전중환 교수가 어떻게 대응했었는지를 안다면 저 정도의 평가는 꽤나 후한 점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군다나 최재천 교수 지도 하에서 공부한 사람의 평가라는 점에서 내가 보기엔 추가점을 받은거나 다름 없었다. 


-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에서부터 책의 제목까지 나는 이 책이 진화 심리학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니었다. 물론 진화 심리학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긴 하지만 저런 식의 제목은 발달 심리학학 부분을 깡그리 무시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옮긴이 자신도 '용어 및 번역노트' 꼭지에서 그 부분을 명확하게 하고 있는데도 제목이 저렇다는건 기만이라고까지 보이기도 한다. 원제가 [Just babies : the origins of good and evil] 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저자가 직접 origin이 아닌 origins라고 하면서 종의 진화에서 도덕성이 시작되었음을 밝힌 진화 심리학과 개체에서 도덕성이 발달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발달 심리학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음을 충분히 곱씹어봤다면 다른 제목이 붙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심지어 저자는 자신이 발달 심리학자라고 명확하게 밝히기 까지...) 


- 첫 장을 펼치면 이 책에 쏟아진 찬사부터 볼 수 있다. 실로 엄청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해외 유명 언론이나 유명 과학저널은 물론이고 피터 싱어, 조너선 화이트, 스티븐 핑커, 마이클 셔머 등 대중에게 친숙한 유명 학자들의 찬사 혹은 호의적인 평가가 가득하다. 무려 6쪽이나 할애하면서 이 책이 얼마나 뛰어나다고 이 책을 꼭 읽으라고 꼬득인다. 여기에 넘어갈만한 후보군은 서점에서 한 번 살펴 볼 사람들 밖에 없음을 생각해 볼 때 과연 여기에 책 전체 분량의 2%를 할애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보통 이런 식의 구성은 내용에 크게 자신 없는 저자나 저자 명성이 아쉽다고 생각한 출판사의 궁여지책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책 내용은 훌륭했다.


- 저자는 토마스 제퍼스의 말과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을 지겹도록 자주 언급하다. 그의 말마따나 '책을 달랑 한권만 읽어본 대학생처럼 어쩌면 창피할 정도로 그를 자주 인용"한다. "도덕적 감각 또는 양심은 팔다리만큼이나 인간의 일부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강하거나 약한 정도로 존재하는데, 사지의 힘이 강하거나 약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토마스 제퍼슨이 1787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인데 무려 책의 머리말 앞, (그러니까 이 책에 쏟아진 찬사를 제외한) 가장 첫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그만큼이나 이 책에서 타고난 도덕적 감각이 있다는 생각은 중요하다. 처음 몇 장을 살펴 보면서 '아 역시 달러, 그 중에서도 행운의 2달러에 얼굴이 박히신 분 말씀은 틀린게 없구나. 위대한 건국의 아버지들. 위대한 갓조국' 하는 마음이 일었다. 갓 태어난 아이에서 아장아장 걷기toddler 직전의 아이들까지, 교육이나 문명의 결과라고 하기 힘든 존재들에서도 도덕적인 선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아기들은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인형을 분명하게 선호했고 공정하게 행동하는 것에 더 마음을 쓴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 책의 영웅들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다만 아기들의 입장이 관찰자에서 당사자로 바뀌면 이야기도 달라 진다. 아기들은 자신의 장난감이 부서지면 언니의 장난감도 부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공정하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하다. 아기들 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청소년, 성인까지 나아간다. 사람들은 누구나 관찰자적 입장일 때는 공정함을 선호하지만 자기 자신의 일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이기적이다. 본능적인 선함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지역주의나 낯선이에 대한 태도, 편협함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토마스 제퍼슨과 애덤 스미스는 옆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종청소와 (익숙지 못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까지 와서까지 저 둘의 편에 서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다음으로 몸과 역겨움의 관계, 가족의 특별함에 대해 설명한다. 이 부분에서는 도덕철학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쯤 되면 이 책의 제목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다수의 도덕 철학자들과 게임 이론가들을 헤쳐나가다 보면 '더러움에 대해 민감한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해 더욱 혐오감을 나타낸다'거나 '역겨운 냄새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혐오감을 가중시킨다'는 등의 흥미로운 진화 심리학을 찾아낼 수 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폭주 기차 사례다. 폭주하는 기차가 달려 오고 있고 선로에는 5명이 묶여 있다. 그리고 사례는 두 가지로 갈리는데 첫 사례에서는 옆 선로에 한 명이 묶여 있고 조작기를 통해 폭주하는 기차를 옆 선로로 돌진하도록 바꿀 수 있다. 5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하는 셈이다. 두 번째 사례에서는 옆 선로에는 아무도 없지만 조작기가 저 아래에 위치한다. 내가 떨어져서 조작기를 변동하기엔 불가능하고 조작기를 변동하려면 내 옆에 있는 덩치 큰 사람을 밀어 떨어뜨려야 한다. 물론 이 경우에 덩치 큰 사람은 죽는다. 두 경우 모두 한 명을 희생해서 5명을 살릴 수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두 사례를 전혀 다르게 느낀다. 조작기를 조작하는 것은 옳지만 사람을 미는 것은 잘못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 더 큰 선을 위해 한 행동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서 누군가를 해치는 것(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있다)과 더 큰 선을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죽이거나 해치는 것 사이(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에는 결정적인 도덕적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 친구 낯선이로 나뉘는 우리 본성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마지막 꼭지, '선해지는 법' 이다. 전술했다시피 우리가 타고는 도덕성이 있긴 하지만 굉장히 작다. 이를 어떻게 초월해서 도덕적 진보, 도덕적 성찰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꼭지다. 여기에는 상상력, 동정심, 특히 지능이 큰 일을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도덕의 원, 즉 우리가 신경쓰는 개체들을 늘려나갈 수 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노예제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고, <올리버 트위스트>가 19세기 영국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불러 왔다. <쉰들러 리스트>나 <호텔 르완다>같은 작품은 일상 생활에서 뉴스를 접하는 것만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문제를 제시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한 문학을 통한 인간의 구원이 이런 지점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한 공자가 말한 서恕나 황금률의 호혜성, 벤담의 개인주의와 롤스의 무지의 베일 등을 통해 숙고를 이용해 더욱 선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 결말은 명확하다. 우리의 도덕 생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두 부분에서 접근해야 한다. 아기는 도덕적 동물이고 공감과 동정심, 정의와 공정함에 대한 이해를 갖췄다. 이는 전적으로 진화를 통해 얻은 작은 시작이다. 다만 우리 도덕성의 결정적인 부분, 동시에 우리 도덕성의 많은 부분은 인류 역사와 개인의 발달 과정에서 나타난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물론 그 시작이 반이었다) 말하고나니 쉬워보이지만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가설이나 주장을 하고 그를 논증하는 식의 쉬운 길을 택하지 않기 때문에 책을 덮을 때까지 어느 정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또 수 많은 실험과 여러 분야의 학자들을 인용하기 때문에 애써 생긴 흥미가 쉽사리 휘발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유머(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다)와 친절한 번역을 따라가다 보면 띠용 하는 순간이 올 것은 틀림없다. 다만 이 책은 진화 심리학 책이 아닌 도덕 심리학 책이다. 진화 심리학이 궁금한 독자들은 스티븐 핑커나 데이비드 버스와 같은 진화 심리학자의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의 저자는 진화 심리학자가 아닌 발달 심리학자다. 또, 이 책의 옮긴이는 할 말이 굉장히 많다. 곳곳의 각주는 친절함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저자가 쓴 부분이 끝났는데도 옮긴이가 두 꼭지나 덧붙이는 부분에선 실소를 금치 못했다.(번역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선 아무래도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를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