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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아서 블레어가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것처럼, 마크 피셔 역시 K-punk라는 블로그명으로 더 유명하다. 00년대 시작된 블로그 붐 이래로 수많은 유명 블로거들이 생겨났는데, K-punk 역시 음악 비평-특히 포스트펑크나 90년대 인디락 쪽으로 상당히 유명한 블로거이다. <레트로 마니아>를 쓴-사실 인디 음악 애호가라면 '포스트락'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평론가로 더 유명하겠지만-사이먼 레이놀즈가 그의 자살에 비탄하며 추모성 글을 쓴 것처럼 이런 분야에선 상당히 유명한데, 나 역시 페이브먼트 팬에게서 이를 알게 된 뒤로 몇 개의 글을 찾아 읽어본 적이 있다. 덕분에 사실 이 마크 피셔라는 이름으로 쓴 책이 두 권이나 한국에 나온지도 알지 못했다. (사실, 지금 와서 찾아보자니 이 이름으로 낸 <자본주의 리얼리즘> 서적이 훨씬 한국 검색 결과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덕분에 이 책 역시 그런 음악 관련 루트가 아니라, 요상하게도 영화 애호가의 추천을 받아서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보지 않았다면 사실 알지도 못했을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읽으면서 조금씩 뭔가 요상한 낌새를 느끼면서 저자를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 책만큼 장르에 대한 글에서 대중음악의 영향이나 비유를 곧잘 갖고 오는 글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더 폴The Fall의 포스트펑크 앨범 <Grotesque (After The Gramme)>을 영국식 마술적 리얼리즘의 예시로 들고 온다던가, M.R.제임스의 황량한 자연에서 오는 공포를 이야기하면서 브라이언 이노의 다크 엠비언트 앨범 <Ambient 4: On Land>를 들고 온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부적절하지도 않은 예시이기에 효과가 더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2i9rImXCfDE
어쨌든 그런 점은 둘째치고,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기이한 것The Weird'과 '으스스한 것The Eerie'에 대해서 짧게 소개하자면, 기이한 것은 뭔가 존재하는 것이 괴상한 것이다.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요소들이 공존하는 것(예를 들어, 동물의 머리를 한 인간이나 꽃, 나무 등으로 지어진 건물처럼)을 기이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대한 예시로 러브크래프트, 더 폴, 데이비드 린치 등의 예시를 들며 어떻게 이 기이한 것들이 묘하게 사람을 매혹하는지-그리고 그 매혹의 원천과 만난 결과 어떻게 파괴되는지-등을 이야기한다. '으스스한 것'은 존재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무언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거나(의문의 실종자들처럼) 존재해선 안 될 것이 존재하거나(새의 울음소리 속에서 느껴지는 괴상한 지성처럼) 하는 경우들의 경우, 우리는 으스스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기이함과는 달리 으스스함에는 뭔가 해소될 여지가 있다. 그 이상한 불일치의 수수께끼의 해소 말이다. 실제로는 이러하였다-와 같은 식.
외계인이 점차 인간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던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미지의, 인간성과는 동떨어진 것 같은 외계인들의 행동이나 우주적 신비가 스필버그의 <ET> 같은 영화로 점차 인간화 되어가는 걸 보면 확실히 기묘한 부분이 있다. 같은 외계를 다루지만 <언더 더 스킨> 같은 영화가 <ET>보단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샤이닝> 등과 더 겹쳐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지를 다루는 영화이다. 사실 그런 점에서 보면 데이비드 린치가 '기이한 것'에 대한 챕터의 끝자락에 나온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DFW가 일전 자신의 <로스트 하이웨이> 촬영 현장에 대한 에세이에서 이야기한 것과 어느 정도 연관된다.
그 에세이에서 DFW는 린치의 TV 시리즈 <트윈 픽스>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시즌 1은 물론 명작이지만, 시즌 2는 좋게 말해도 평작이라 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바로 위의 수수께끼와 얽혀 있다. 린치는 기이한 것, 현실이 꿈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되며 서로 조응되지 않는 요소들이 엉키는 악몽을 그려내는데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이 <트윈 픽스>에서 수수께끼 같은 시즌1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트윈 픽스>는 어디까지나 추리극에 가깝고, 덕분에 린치는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야만 했다. "린치가 중심 살인 사건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란 말로 시즌2를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만큼, 린치는 기이한 것을 그려내는 감독이지만 으스스한 것을 그려내선 안 되는 감독에 속한다.
위에 들었던 예시들은 어디까지나 책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머지를 여기 더 이야기하기도 그런 것이, 기실 마크 피셔가 예시로 드는 것들 중 태반은 내가 보지도 않은 것들인 탓이다. 전에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고,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리딩>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직접 보지 않은 작품에 대한 평론을 읽는 건, 읽지 않은 고전을 언급하며 그 재창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보는 것보다도 오히려 더 곤욕스럽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대프니 듀 모리에의 글처럼 번역도 많은 글들은 좀 읽어보고 와야겠다.
이 글 보니까 트읜 픽스 마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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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한 사람도 린치 이야기하면서 여태 읽은 글 중 가장 린치 잘 표현했다고(10페이지 가량인 게 아쉬울 뿐) 말하면서 추천했는데 뭐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