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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개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서술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을 겪는 젊은 일본 남녀의 이야기,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이를 대신하여 죽은 콜베 신부의 이야기다.

바로 전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는데 자연스레 두 작품을 비교하게 됐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의 폭력성을 다루지만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 민주항쟁의 희생자들과 주위 사람들의 아픔을 오롯이 전한다. 그들의 아픔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고자 단어 하나하나, 묘사 하나하나를 장인정신으로 벼리고 갈고 닦은 느낌이었다. 나도 그 아픔을 느끼느라 책을 읽으며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강은 인간의 폭력성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 사유를 이 작품에 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의 본질이 흐려질 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한강의 생각을 표현한 다른 작품이 있다면 접해보고 싶었다.


'전쟁과 사랑' 에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고민하고 딜레마에 빠진 인물의 입을 빌려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만든 가장 지옥에 가까운 곳이었다는 아우슈비츠.

이 지옥같은 현실속에서 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 비인간적인 폭력 앞에서 인간의 양심, 연민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얼마나 무감각해질 수 있는가.

신의 섭리 속에서 인간의 왜소함과 나약함을 느끼면서도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 인간은 운명의 톱니바퀴를 이루는 부품에 불과한 것일까.


엔도 슈사쿠의 소설이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만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거부감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의 소설이 인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인간이다. 종교를 가졌다고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죽음의 공포 속에서 괴로워했다. 하지만 폐허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소설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끝났다. 모든 것이 끝났다. 살아있던 네 명은 '청소'되었다. 다리가 부러진 둥근 안경을 쓴 콜베 신부도 죽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도마뱀은 조금 전과 같이 창틀에 달라붙어 햇빛을 즐기고, 벌은 날갯소리를 내고, 하늘은 푸르렀다.

이 수용소가 없었다면, 그리고 지금 일어난 일을 모른다면 모든 것이 조용하고 모든 것이 아름다운 여름의 오전이었다...


엔도 슈사쿠는 인간의 비극과 무심한 다른 세계의 모습을 나란히 묘사한다.

이 비극에 관심도 없다는듯이, 아무렇지 않은듯 흘러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무언가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다.

같은 인간에게 버림받고 고통받은 존재들이 다른 그 어떤 존재에게서도 기억되거나 위로받지 못한채 사라져간다. 거기에서 온 슬픔일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 '침묵'에서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이토록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데 왜 이토록 침묵하냐고 물었다.


'침묵의 비'에 쓰여진 말도 엔도 슈사쿠가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고뇌한 흔적 중 하나일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님! 바다는 너무나 푸릅니다.


센치해지는 새벽에 행복한 독서였다. 다음에 깊은 강, 바다와 독약을 읽으며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엔도 슈사쿠를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