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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운동론



 31 운동이 발발한 1919년에 수백만 한국인들은 독립을 요구하는 정치적 행동에 몸을 던졌다. 당시 한국인들 사이에는 민족해방운동 방법론을 둘러싸고 여러 개의 사상적 조류가 형성되어있었다. 그 정황을 전해주는 [독립신문]기사를 다소 길지만 찬찬히 읽어보자. 



 [독립운동의 방식에 관하여 수종(數種)의 의견이 있을 것은 면치 못할 일이며 또 그것이 해될 것은 아니라. 혹은 독립운동의 유일한 방법은 혈전뿐이라 하여 닥치는 대로 집어들고 방금이라도 나가 싸우기를 주장하고 혹은 해외의 선전(宣傳)을 성(盛)히 하여 세계의 여론과 동정에 소(訴)하여서 제 1차 이하의 국제연맹회의에서 □□을 결(決)하기를 주장하며, 같은 주전파 중에도 혹 준비를 충분히 하고 시기를 대(待)하여 일대 결전을 행하기를 주장하고 혹 당장에 폭탄이나 단총이나 닥치는 대로 들고 적을 학살하기를 주장하며, 선전론자(宣傳論者)중에는 혹은 구미(區美)에 대한 선전만을 주장하는 이도 있고, 혹은 일본에 대한 선전을 중요시하는 자도 있으며, 또 혹은 청년의 교육, 민족의 개조, 산업의 장려로써 독립운동, 건설운동의 주지(主旨)를 삼으려는 자도 있나니, 독립운동자 중에는 이상의 어느 일종(一種)의 주장을 가졌을 것이라.]



 독립운동에 투신한 한국인들 사이에 수많은 방법론이 검토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문장에서 거론되고 있는 운동론을 대별해보면 세 종류이다. 첫째, "독립운동의 유일한 방법은 혈전뿐"이라고 주장하는 '주전파'가 있다. 이 부류에는 독립전쟁론자와 테러투쟁론자들이 포함되어있다. 둘째, "세계의 여론과 동정에 호소"함으로써 한국의 독립을 꾀하려는 '선전론'이 있다. 달리 말하면 '외교론'이다. 이들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일본 사이에 조성된 국제적 모순을 한국독립에 유리하게 이용하고자 외교활동에 전념했다. 국제질서 재편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베르사유 강화회의, 국제연맹회의, 워싱턴회의는 이들의 희망이었다. 셋째, "교육, 민족의 개조, 산업의 장려"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견해는 통상 '문화운동론'이나 '실력양성론'이라고 지칭되었다. 



 3-1운동기의 주된 운동론은 외교론이었다. 이 운동론의 핵심은 국제회의에 한국대표단을 파견하는 것이었다. 재상해 신한청년당은 김규식을 베르사유 강화회의에 파견했고, 재러시아 대한국민의회는 윤해와 고창일을, 재미 대한인국민회는 이승만과 정한경을 각각 파견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국제연맹회의에도 한국대표단을 파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워싱턴회의에도 한국대표단이 파견되었다. 이 전술은 국제질서 재편과정에서 미국과 일본 사이의 모순 격화가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변모시킬 가능성을 낳는다는 예견에 입각한 것이었다. 



 한국대표단의 외교적 영향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하위전술이 배치되었다. 평화적 대중정치 시위전술과 국경지대 무장부대의 국내진공 작전은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대중정치 시위전술의 지위는 1918년 말 1919년 초 북간도 장동에서 열린 '지사계의 비밀회의' 참석자들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베르사유 강화회의에 한국대표를 파견하되 "민족 전체가 떠들고 일어나 시위운동을 격렬하게 하여, 대표의 뒤를 성원하여야 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달리 말하면 만세시위 운동이 베르사유 한국대표단의 외교적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한 압력수단으로 간주되었다. 



 무장부대의 국내진공 전술도 다르지 않았다. 31운동 직후 무장부대 조직에 참여한 사람들은 무장투쟁의 효용을 강화회의와 연결지어 생각했다. 국내에 무장대를 진공시커 '병란지'로 만드는 행위의 목적은 '열강의 주의를 환기' 시키는 데 있었다. 국경지대 무장투쟁의 지위는 국제회의에 한국독립 문제를 상정시키기 위한 압력수단으로 상정되었다. 



 그러나 외교론은 머지 않아 영향력을 상실했다. 베르사유 강화회의는 한국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 없이 종료되었다(1919,6). 뒤이어 국제연맹회의와 워싱턴회의도 한국문제에 관한 한 침묵함으로써 일본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외교론은 더이상 독립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효용을 보여줄 수 없었다. 



 1919년 후반기엔 외교론이 쇠퇴하고, 그 대신 실력양성론과 독립전쟁론이 대두했다. 실력양성론자들은 외교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들은 외교활동이란 "독립운동의 일부적 활동에 불과"하다고 했다. "실력으로 표준을 삼는 20세기 무대에 당당히"서기 위해서 "제일로 요구할 바는 우리의 실력"이라고 주장했다. 실력양성론은 자주적 입장을 강조했다. "연맹회도 의뢰치 말고 미국 기타 여하한 동정국이든지 의뢰치 말라"고 일갈했다. 열강은 자국의 "이해관계가 그리 심(甚)치 아니한 경우에는 그다지 우리를 조(助)치 아니하리라"는 것이다.



 실력양성론자들은 자주 자립의 실력양성만이 한국독립을 보장한다고 파악했다. 이 운동론은 외교론에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한국인 대중에게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 실력양성론자들에 의해 뒷날 1930년대 민족통일전선운동의 저 유명한 구호가 만들어졌다. "생명을 희생한자 생명으로, 금전이 유(有)한 자는 금전으로, 학문이 유한 자는 학문으로, 철권(鐵拳)이 유한 자는 철권으로"라는 구호가 그것이다. 



 이 운동론은 안창호, 이광수 등에 의해 적극 주장되었고 대다수 민족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실력양성론은 광범한 한국인 대중의 지지를 얻기에는 두 가지 약점이 있었다. 하나는 한국독립을 기약 없는 먼 장래에나 실현되는 것으로 제기한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 노선이 계급적 제한성을 띤다는 점이었다. 결국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익을 옹호할 따름이지 한국인의 대다수를 이루는 빈천자들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계급적 지배를 합리화하고 영속화한다는 점이었다. 



 실력양성론의 약점에 동의하지 않는 인사들이 '독립전쟁론'을 지지했다. 이 운동론의 지지자들 중에는 초창기 한국인 사회주의자들이 포함되어있었다. 아니 그보다 초창기 한국인 사회주의자들이 이 운동론을 가장 열렬히 주장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물론 독립전쟁론을 지지하는 흐름 속에는 다른 정치적 지향을 갖는 사람들, 즉 복벽론자, 공화주의자들도 포함되어있었다. 



 독립전쟁론이 고조된 것은 1919년 8월 이후였다. 그달에 상해임시정부는 '개조'를 선언했다. 연해주의 한인사회당이 상해로 근거를 옮긴 것도 이때였다. 독립전쟁론자들은 임시정부가 외교론에 치우쳐 있었음을 비난했다. 그 대신 북쪽 국경지대에 "아령(俄領), 서간도, 길원(吉垣, 북간도) 3처에 중견적 통일의 최고기관"을 설립할 것을 주장했다. 



 독립전쟁론의 배경에는 제 1차 세계대전 직후 고조된 세계적 차원의 혁명운동이 동시적으로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있었다. "세계의 신창시(新創始)를 작(作)하려면…… 세계 전민족의 대동란(大動亂)이 유(有)하여야 할"것이라 전망했던 것이다. 독립전쟁론에는 세계혁명론이 결합되어있었다. 소비에트 러시아, 일본, 구미의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독립전쟁의 국제적 우군으로 간주되었다. 세계 혁명운동의 일환으로서 한국독립전쟁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독립전쟁론은 사회주의 수용의 통로가 되었다. 그것은 한국독립을 열렬히 갈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게 만든 촉매제였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한국인들 사이에 사회주의가 수용된 원인 중 하나를 이렇게 설명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동경하고 미국의 힘에 의지하여 독립을 기대한 불령선인은 그 후 소위 미국의 후원이란 단지 필설(筆舌)의 성원일 뿐이고 하등 구체적 사상(事象)에 도움되는 바 없음을 자각하게 되어…… 점차 과격파에게 접근하는 경향을 보였다.]


 미국의 역할에 한국독립의 희망을 걸었다가 그 기대가 어그러지자 사회주의 쪽으로 접근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외교론의 영향력이 퇴조함에 따라 사회주의에 대한 호감이 증대되었음을 보여준다.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 84-88



책이 간단하게 정리가 잘돼있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