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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27쪽인데 스포를 안 하는 게 더 신기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스포가 있으니 조심해. 근데 이거 읽는 사람은 거의 다 읽었지 않을까?


순서는(링크 첨부 예정)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이렇게 갈 거야.


-


감정 그 자체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감정을 통제, 소유한다는 감각을 얻고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한 감정의 물성이 있다


비록 식약처에게 얄짤없이 짤리고 해외로 튀었지만 말이야!


한줄 요약


주장도, 주제의식도, 갈등도, 담론도 모두 약해빠졌다



이번 건 그냥 평점부터 밝힐게. 2.0/5.0이야. 아쉬운 점보다 별로인 점이 더 많았던 단편. 여기서 괜찮은 거 두 개. 감정 그 자체를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다뤘다는 것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상품의 등장. 이거 두 개 빼곤 나머지 전부 안 괜찮았어. 특정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이모셔널 솔리드의 "감정의 물성" 상품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식약처에게 『검증』당하고 쫓겨나가기까지의 과정을 시니컬하고 힙스터기질이 좀 있는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주인공인 '나(정하)'가 겪고 관찰하는 내용이야.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여친 보현과의 갈등이나, 후배 유진과의 별 내용 없는 내기나, 아니면 감정의 물성을 만든 사장님 얘기나......



27쪽 안에 이야기를 너무 짧게만 언급하고 넘어갔고, 주된 갈등은 아무래도 '나'와 보현의 갈등인데, 보현의 갈등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기보다는 주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소모품(다른 갈등이나 사건들과 비슷한 비중의)처럼 다뤄져서 솔직히 큰 감흥이 없어. 자긴 비혼주의자인데 가족과 갈등을 겪고 있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딱딱 생각하는 '나'와는 달라서 10년 연애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결국 우울체들을 사들여서 그 우울한 감정을 계속 누리고 있는 건데......



그냥 솔직히 말하자면 '나'랑 보현의 관계는 인간실격의 요조 같은 애랑 사귀는 정상인 여친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답이 없는 찡찡거림을 통해 결국 '공감'과 '이해'의 영역에 다가와주라는 건데, 그걸 위해선 '대화'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나'와 보현은 대화를 하질 않거든. 물론 모든 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보현이 가진 상처와 우울감은 말로 감히 표현하기 어렵겠지. 근데 어쩌라고! 그걸 표현하려는 시도, 나누려는 시도가 있는 것과 없는 건 상당히 큰 괴리를 가지고 있잖아. 요조가 타인의 감정을 확인해보려고 하지 않은 것처럼 보현도 결국 대화도 제대로 안 하는데, '나'는 거기서 얄팍하지만 작은 공허함을 느낌으로써 보현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공감해. 그러고 끝나.



그나마 인상 깊게 본 대목은 감정 그 자체를 느끼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서인데, 우울체, 증오체, 공포체 따위의 부정적 감정의 물성을 사람들이 산다는 것이지. 거기에 비슷한 예시로 든 게 신파 영화를 보고 눈물 쫙 뽑아낸 아주머니가 나가면서 영화 포스터를 구겨서 버린 것이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의미 있는 눈물을 원하는 게 아니라 눈물 그 자체를 원하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소유하거나 향유하고자 하는 거지. 약간 지금 머릿속에선 인사이드아웃에서 슬픔을 그대로 긍정함으로써 오히려 상처가 치유됐다는 얘기가 떠올랐는데, 이것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은 하지만......



솔직히 그런 걸 얘기하고자 하면 조금 더 일관되게 다뤘어야 한다고 봐. 단편이잖아. 짧잖아. 그러면 좀 일찍이 담론을 등장시키고 다뤄줘도 나쁘지 않잖아. 근데 내가 앞서 말한 내용이 전부 한 5~6페이지 남기고 다 나와. 앞선 내용은 진짜 별 거 없어서 그래. 그래서 내가 지금 아쉬움보다 별로라고 느낀 게 많다고 하는 거야. 아쉬울 게 없어. 이건 그냥 못 쓴 거야.



주인공 포지션도 대충 이 주제의식과 담론에서 안티테제, 비판적 태도를 가진 인물이었는데, 그 비판적 태도를 가진 것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반박하기는커녕 "아 그런가?"하고, 막판엔 미약하게 공감하고... 반동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주제에 너무 쉽게 흔들려. 근데 더 웃긴 건 주동인물들은 주장하는 바가 너무 약하거나 답답해ㅋㅋ 차라리 이모셔널 솔리드 사장님을 좀 더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의견 피력하는 인물로 내세웠으면 나았을 텐데.



1.5 안 준 게 다행일 정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