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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여태까지 순한 맛 읽다가 본색을 드러낸 것 같았다. 사실 순한 맛이라서 산 거기도 한데...... 스포일러 많으니까 조심해.
순서는(링크 첨부 예정)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이렇게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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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존재는 엄마로서 기억된다
한 여성으로서 기억되는 게 아니라.
그런 엄마를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 마, 이해 못하면 그게 페미니즘이겠니?
한줄 요약
무난한 페미니즘 서사인데, 이거 굳이 SF일 필요가 있을까요?
관내분실...... 사실 쵸큼 기대한 건 사실이야. 상 받았다잖아! 그것도 과학문학상. 그래서 나는 좀 개쩌는 SF서사라든지, 혹은 창의적인 발상이라든지, 혹은 이런 기술적 문제에 대한 작가 나름의 고찰이 담겨있는 줄 알았지! 하지만 현실은 페미니즘 서사였고, 내가 기대했던 SF는 사실 케챱과도 같은 양념장이었으며, 그 양념장 뺀다고 해서 문제될 게 전혀 없는 서사였어. 진짜 난 이게 왜 SF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SF설정 배경으로도 페미니즘을 얘기하는 것에 불만 가지는 게 아니라, 최소한 그렇게 기능한다면 SF의 기술 설정이 페미니즘적 담론과 연결지어져야지. 근데 여기선 아냐ㅋㅋㅋ
사실 김초엽 읽어가면서 인내심이 박살나기 시작한 터라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진 건 어쩔 수 없어. 딱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기점으로 대실망쇼쇼쇼의 향연이라 마지막 작품 읽고 총집편엔 욕이나 안 쓰면 다행이겠지 싶더라. 나름... 냉정하게 말해서 페미니즘 서사가 너무 봐온 유형이라서 클리셰 같았고, 진부하게 느껴진 건 맞는데, 그걸 일단 지우고 보면 몇 가지 걸리는 점 몇 개 빼면 그렇게 나쁠 건 없는 무난한 서사거든. 물론 이렇게 이것저것 감안해줘서 무난한 서사는 망한 서사지. 맞아. 망했어. 난 정말로 이 작품에서 왜 SF적 설정을 다뤄야 하는지 모르겠다. 찐으로 SF설정 다 걷어내고 그냥 현실세계 순문학으로 내었어도 문제가 없거든.
관내분실에서 주요한 SF적 설정은 딱 하나야. 사후 마인드 백업. 죽은 사람의 시냅스 구조를 스캔해서 복사+붙여넣기한 거지. 이것 때문에 죽은 자를 추모하는 형식이 바뀌거나 그런 건 잡설로 넘어가버렸고, 납골당이 이제 마인드 도서관으로 바뀐 거야. 죽은 사람 만나러 도서관 가는 거지. 근데 뇌(기억)를 백업하는 거다 보니까 이걸 물리적으로 찾는 게 아니면 사실상 데이터 검색이 불가능하단 말이지? 그래서 인덱스를 만들어서 분류를 해. 이 사람의 고유 번호, 출생지, 이름... 뭐 이런 거. 이후로 몇 가지 이런 거에 대해 담론이 오가지만, 그냥 결국 죽은 자를 복붙해놓은 거라 실제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고, 그거 만나본 사람은 너무 똑같아서 진짜 같다고 말하는 정도야.
그리고 이야기는 딸인 '지민'이 3년 만에 엄마를 찾으러 갔는데 엄마가 검색이 안 된다는 걸로 시작해. 대충 인덱스가 다 제거돼서 도서관 내에 존재는 하는데 검색으로 찾을 수 없단 거지. 지민은 사실 충동적으로 만나러 온 거였는데, 엄마가 막상 만날 수 없다고 하니까 더 만나려고 해.
이 설정이 기능하는 역할은 딱 하나. 새로운 검색 방법을 이용하기 위해선 유품 같은 고인이 크게 반응할 만한 물품을 찾으라는 거였고, 여기서 지민은 엄마의 유품 중 자길 낳기 전에 다니던 출판회사의 책을 가져와. 엄마가 표지 디자인했거든. 그리고 엄마 만나고. 만나기 전까진 왜 만남? 이었다가 만나고 보니까 너무 진짜 같다고 하고. 끝. 결국 이 설정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인데, "이야기의 시작"과 "엄마의 유품 찾는 동기" 그리고 "엄마 만나게 하는 도구"야.
이 역할들이 소설에 큰 영향을 미치느냐? 사실 진지하게 말해서 전혀 아냐. 그냥 현대 배경해도 이정도 시작과 엄마 유품 찾는 동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엄마 만나게 하는 도구는 사실 막판 한 페이지만 실려있으니 사실상 그거 없이 무덤 앞에서 혼자 떠들어도 될 정도야. 까놓고 말해서 난 이 설정이 가지는 무게가 지나치게 가볍다고 생각되더라. 비중도 없고, 진지하게 다뤄지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페미니즘 서사를 위해 희생된 안타까운 설정......
내가 말하고 싶은 건 SF설정으로서 가지는 메리트가 하나도 없다는 거지. 죽은 자의 뇌를 백업해. 이 한 문장으로 얼마나 많은 담론이 파생될 수 있으며, 그걸 통해 인간의 정의나 우리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따위를 다뤄볼 수 있겠지.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걸 활용해서 얼마든지 장르적 재미는 물론이고 다른 주제의식과 충분히 연계지어 살릴 수 있어. 근데 관내분실에서는 그러느냐? 아니, 전혀. 활용되고 있질 않아.
페미니즘 서사는 좀 있다가 더 말할 거지만, 기본적으로 난 이걸 SF라고 부르고 싶지가 않더라. 아, 물론 조건은 갖춰져있지. 굳이 분류를 하자면 순례자들이나 인지공간보단 훨씬 SF적이야. 근데 그것들은 최소한 그런 SF적 설정이 주제의식이나 서사에 깊게 관여를 한단 말이야. 이건 진짜...... 뒤로 갈수록 왜 나오는지 모르겠더라. 엄마도 사람이고 한 사람의 여자야!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포기했던 삶이 있어! 엄마가 아닌 '김은하'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것 외에도 사랑할 수 없는 관계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어서 더 불행해졌다든지... 가족에 관한 김초엽의 고찰이 SF적 설정과 맞물렸느냐......
말 나온 김에 페미니즘 서사를 살펴볼까? 엄마는 산후우울증 때문에 딸에게 집착했고, 그 때문에 남동생이 먼저 질려서 나가고 딸도 질려서 나가버렸어. 그러고 나서 엄마가 죽었고. 아빠는 원래 예민했다며 방치하다가 그냥 일 나가서 집에 안 들어오는 쪽을 택했었던 가족이야. 근데 사실 가족도 아니더라. 남동생이 아빠를 성까지 붙여서 풀네임으로 부르는 거 보고 처음엔 다른 사람인가 싶었다. 콩가루 집안인 게 팩트임.
아무튼 엄마가 실종됐으니 지민은 엄마에 대한 생각들 이렇게 저렇게 하는데 마침 유품을 찾으라니까 자기 집에 쟁여놓은 유품을 까봄. 근데 특정할 만한 게 없어. 엄마의 존재가 이렇게 희박했는지 의심을 막 해. 이 세상에 지워지려던 게 아닐까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거의 의절한 것 같은 아빠를 찾아가니까 알고보니 인덱스 지운 게 아빠였네?(어느 정도 의심은 했다고 하지만) 그게 엄마 소원이라고 들어줬다고 함. 지민은 어쨌든 엄마 유품 있냐고 한 뒤 다락방에서 엄마의 유품들을 살피면서 왜 죄다 타자의 것(육아일기 같은)인지 한숨을 쉬다가 엄마가 출산하기 전 다녔던 회사에서 출판한 책 4권을 발견함. 엄마가 표지 디자인한 거고.
그래서 그걸로 여러 얘기를 늘여놓는데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엄마도 한 여성이고 한 사람이고 한 명의 김은하였다 이말이야~ 지난 살던 방에 엄마만의 방이 없었단 것도 깨달았고, 엄마도 아빠랑 결혼하기 전에, 혹은 출산하기 전에 김은하였던 시절이 있었겠고...... 그냥 여태껏 페미니즘이 줄곧 주장하는 엄마란 존재와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내용들이야. 가족주의를 해체시키는 작업도 있고. 이건 엄마와 딸의 관계를 "사랑할 수 없는 관계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엄마와 지민은 더 불행해진 게 아닐까."라고 서술하는 부분에서 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인데...... 아무리 가족마저 개인 대 개인으로, 타자와 타자로 구분짓는다 한들 가족관계를 '사랑할 수 없는 관계'라고 못 박는 건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더라.
육아에 대해서도, 엄마의 삶이 사실상 출산과 육아 때문에 망가진 걸로 나오는데, 이에 대한 묘사가 "은하에게도 지민을 낳기 전의 삶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라는 족쇄에 아직 걸리지 않았던 때. 그리도 어쩌면, 엄마의 진짜 삶을 가졌던 때가." 이래. 난 이거 보면서 그럼 육아를 하는 순간 가짜 삶으로 바뀌는 건가? 주체성 강조하면서 "내가 하고싶은 거"를 위해 육아마저 방해요소 취급하는 건 이해 못할 바가 아냐. 공감하긴 싫지만. 근데 그렇다고 해서 육아를 가짜 삶으로 취급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 마치 불행과 파멸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취급하는 걸 보니까 얼척이 없더라고.
근데 사실 따져보면 이거에 대한 김초엽의 생각이 여러 단편에 퍼져있는데, 순례자 어쩌고에서도 '마을'의 아이들은 기계자궁에 태어나고 부모 없이 더 큰 '공동체'에 의해 길러져. 인지 공간도 마찬가지고. 이런 걸 보면 "부모의 존재를 지우고 모두 시험관 아기로 자라나야 행복할 거다~" 같은 추측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이렇게 넘겨짚는 건 굉장히 과격한 발상이지만...... 이렇게 다 은연 중에 깔고가는 걸 어떡해ㅋㅋ 심지어 지민은 작중에서 임신한 상태야. 임신한 상태에서 저런 서술묘사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엄마를 이해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는 것이지만, 동시에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해서 가지는 태도가 끔찍해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
지민은 나름 반성을 하면서 이제 용서를 하거나 구하긴 너무 늦었다. 자기 한 짓이 있었고, 엄마가 한 짓도 있고. 그러는데, 그 이전에 아빠와의 대화에서 솔직히 난 서술된 걸로 볼 때 아빠가 엄마에 대해 제일 의리있고 노력한 것 같거든? 최소한 자식 새끼들처럼 떠나진 않았고. 마인드 백업도 설득해서 하게 했고, 유언까지 들어줬고. 근데 그런 걸 두고 딸이 질책하고 나서 아빠는 틀렸다 하는 게 너무 어이가 없더라. 콩가루 집안은 괜히 콩가루가 아니라니까? 자식농사 대흉작 한 아버지의 비애를 아빠 묘사하는 첫 문장에서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결국...... 정리하자면 망한 서사, 괜한 설정, 뭐 기타 등등...... 감정의 물성과 마찬가지로 아쉬움보단 별로인 게 많았다. 50페이지 동안 대실망쇼였음. 평점 1.5/5.0. 감정의 물성은 차라리 짧아서 다행이란 생각까지 들더라. 이 작품의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SF적 설정을 주제의식과 연결 못 지은데 있음. 말 그대로 서사를 위한 도구로만 활용되는데 그게 너무 절대적이지도 않고 비중이 있는 것도 아니고(영향력은 끼치지만), 주 담론에서 완벽히 떨어져 있고...... 페미니즘 서사는 여태 겪은 클리셰랑 비슷비슷해서 깎을 것도 없는데, 설정을 너무 못 살린 게 실망스러워서 최악의 작품으로 꼽았다.
아니 이거 과학문학상 대상이라매!!! 김초엽 단편 중엔 차라리 과학문학상 대상 받으려면 공생가설이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받아야 한다. 아니면 스펙트럼이나. 이게 대체 왜 받은 거지. 과학문학이라면서 과학은 솔직히 tmi 수준이던데???
+) 과학문학상이 투고로 이뤄지는 거라 다른 작품이 뽑힐 수는 없다고 하네.
점점 평가가 떨어지네
근데 다른 리뷰에서도 표제작(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후로 평가가 점점 떨어지긴 함. 관내분실은 호불호가 좀 있던데
읽느라 수고했다ㅋㅋㅋ처음엔 차분하다가 단편들 진행될수록 빡치는 게 보이네.
어떻게 읽는지를 깨달은 이후로 더 빡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읽으면서 계속 느끼는 거지만... 김초엽... SF작가 주제에 설정을 제대로 못 활용해...
페미는 멋진 신세계를 꿈꾸는가?
ㅋㅋㅋㅋㅋ멋진 신세계... 그래 멋진 신세계 나쁘지 않지.......
형 책 열심히 읽었구나! 리뷰 고마워. 나도 최근에 읽었는데 리뷰 읽고 위로가 됐어. (나만 열폭하나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