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쾌락을 주고 행복한 일이 그 자체로 삶의 미덕이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이 쾌락으로서의 행복과 명확히 구분되는 것인지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곤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 '우연히' 더 나은 삶의 여건에 놓인 것에 감사하거나 '초월적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더 행복할지라도, 이러한 삶이 무조건 더 가치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긍정심리학과 행복 연구의 모호성을 둘러싼 논쟁은 꽤 오래된 것이라서, 굳이 '긍정의 배신'과 같이 공격적으로 이 주제를 다루는 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관련된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연세대 서은국 교수는 그의 책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이 잘못되었으며 행복(=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은 어떤 행동을 추동하기 위한 생리적 유인일 뿐이라면서, 행복이 삶의 목표나 기준점으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감사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의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행복수치는 건강이나 돈과 같은 삶의 객관적 여건보다는 그 사람이 '긍정적 자극에 민감한 성격(=BIG5외향성)'을 타고났는지에 좌우되기에, 정서적 사건의 영향력 또한 일시적일 뿐 어떠한 일을 계기로 삶이 극적으로 바뀌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죠.
그러나 (서은국 교수와 같이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를 번역한)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그의 책 '굿 라이프'에서 SWB 중심의 계량적 행복 연구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좋은 삶에 대해 다루는 다양한 연구들을 조명합니다. 물론 따져보면 연구들도 저마다 좋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 책이 모든 관점을 충실히 담고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긍정심리학과 행복 연구의 모호성을 둘러싼 논쟁은 꽤 오래된 것이라서, 굳이 '긍정의 배신'과 같이 공격적으로 이 주제를 다루는 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관련된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연세대 서은국 교수는 그의 책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이 잘못되었으며 행복(=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은 어떤 행동을 추동하기 위한 생리적 유인일 뿐이라면서, 행복이 삶의 목표나 기준점으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감사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의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행복수치는 건강이나 돈과 같은 삶의 객관적 여건보다는 그 사람이 '긍정적 자극에 민감한 성격(=BIG5외향성)'을 타고났는지에 좌우되기에, 정서적 사건의 영향력 또한 일시적일 뿐 어떠한 일을 계기로 삶이 극적으로 바뀌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죠.
그러나 (서은국 교수와 같이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를 번역한)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그의 책 '굿 라이프'에서 SWB 중심의 계량적 행복 연구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좋은 삶에 대해 다루는 다양한 연구들을 조명합니다. 물론 따져보면 연구들도 저마다 좋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 책이 모든 관점을 충실히 담고있는 것은 아닙니다.
좆노잼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