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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룬 내용들은 몇 가지 점에서 D.H.로렌스와 나의 짧은 우정에 관련되어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인간 관계의 개혁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필요한 개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관점이 정반대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다. 나와 로렌스의 친분은 열렬했지만 1년 정도밖에 유지되지 않았다....

그의 편지들은 점점 적대적인 내용으로 변해 갔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선생이 지금처럼 산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는 선생의 강의가 훌륭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것도 거의 끝나가는 것 아닌가요? 저주받은 배에 들러붙어 떠돌이 상인들을 붙잡고 그들의 언어로 열변을 토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왜 배 밖으로 뛰어내리지 않습니까? 왜 그 모든 쇼를 싹 걷어치우지 않습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는 교사나 설교자가 아니라 범법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볼 때 그의 글은 화려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나야말로 그 사람보다 더한 범법자가 되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가 내게 불만을 표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417

한번은 이렇게 써보내기도 했다. "일과 글쓰기를 모두 중단하고 기계 도구가 아닌 생물이 되십시오. 사회라는 선박을 깨끗이 치워버리세요. 선생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하찮은 존재, 두더지, 생각할 줄 모르고 길을 더듬어가는 동물이 되십시오. 더 이상 학자인 척하지 말고 부디 갓난아기가 되어보십시오. 아무것도 더 하지 말고 그냥 '있으세요.' 바로 거기서 출발하여 완전한 아기가 되어보십시오.- 용기라는 이름으로. 아참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유언장을 작성하실 때 부디 내게도 먹고살 것을 남겨주십시오."  418

그는 이상한 '피'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뇌와 신경 외에 또 하나 의식의 본거지가 있다. 우리 내부에는 일반 정신적 의식과는 독립된 피의 의식이 존재한다. 사람은 뇌나 신경에 관계없이 피 속에서 살고 인식하고 존재를 취한다. 이것은 생명의 반쪽 중 하나로서 어둠에 속해 있다. 내가 여성을 취할 때 그때 피의 지각력이 최고조가 된다. 내 피의 이해력은 압도적이다. 우리에게는 정신 및 신경의 의식과 별도로, 그 자체로서 완결적인 피의 존재와 피의 의식과 피의 영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완전히 쓰레기 같은 소리였기 때문에 나는 단호하게 그의 생각을 거부했다. 419

사람들은 대부분 알지 못했지만 사실 로렌스는 자기 아내의 대변자였다. 그에게는 웅변 능력이 있었으나 그녀에겐 사상이 있었다. 아직 영국에 정신 분석학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그녀는 해마다 여름이면 오스트리아에 있는 프로이트주의자들의 군거지에 가서 얼마가 있다 오곤 했다. 어쨌거나 나중에 무솔리니와 히틀러에 의해 전개될 사상을 그녀가 일찌감치 흡수한 셈인데, 그런 생각들을, 이른바 피의 의식을 통해 로렌스에게 전해 주었던 것이다. 로렌스는 본질적으로 소심한 인간으로서, 허세를 부려 그것을 숨겨보려 했다. 그의 아내는 소심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비난에는 허세가 아니라 천둥같은 노기가 담겨있었다. 그는 그녀의 날개 밑에서 큰 안도감을 느꼈다. 마르크스처럼 그에게도 독일 귀족과 결혼했다는 속물 같은 자부심이 있어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자기 아내를 근사하게 포장해 놓았다. 그의 사상은 순수 리얼리즘을 가장한 자기 기만의 덩어리였다.  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