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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스파이어 > - 조이스 캐롤 오츠 (자음과모음) 최민우 옮김



뭔가 사회에 저항하는 소녀들의 얘기로 보인다. 범죄와 비행에 빠진 소녀들이지만 여성으로서 느끼는 공포와 억압에 맞서 싸우며 오츠의 방식으로 풀어낸 소설로 보인다.

소설 전반이 폭력으로 물든 느낌이다. 이런 험악한 환경에서 자라면 당연히 거칠어질 수밖에 없고 폭력 단체를 만들어 저항하는 건 필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의 시궁창 같은 경험들은 내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소녀 갱단 조직의 결성으로 그녀들은 사회에 맞서려는 듯하다.

1950년대 냉전 시대의 매카시즘 반공 열풍이 풀던 광기로 가득 찬 음울한 미국 사회를 잘 그려낸 듯하다.

윔피 워츠는 조카에게 그냥 타자기를 주면 될 일을 가지고 괜히 문제를 키운 듯하다. 이런 남성우월주의와 권위주의가 과격한 여성주의에 불을 지핀다. 이런 쓰레기들 덕분에 정신 나간 이들이 더 날뛰는 빌미를 제공한다고 본다.

동물을 학대하는 애완동물 가게에 대한 얘기를 보니 미국식 자본주의 사회도 저자가 비판하는 듯하다.

폭스파이어는 단순한 갱단이 아니다. 사회 문제에 접근하며 고치고 싶어 한다.

결국 렉스는 모든 남자들을 증오한다. 슬슬 불길해진다. 브레이크가 망가지며 렉스가 폭주할 조짐이 이때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어딘가 미국 사회의 문제가 이 작품에 훤히 드러나는 듯하다. 무너진 공교육, 빈곤, 가정불화, 성범죄, 갱단, 폭력. 솔직히 이런 미국의 모습을 보면 절로 사회주의 낙원을 꿈꾸며 혁명을 외칠 것 같다.

결국 법의 심판을 받는 폭스파이어 멤버들. 차를 훔쳐 질주한 사건은 감싸주고 싶지 않다.

문득 빈곤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란 생각이 든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폭스파이어가 사고 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탔던 차량은 폭주를 멈출 수 없는 그녀들의 삶을 의미하는 걸까 싶다.

문득, 그녀들을 폭스파이어로 만든 건 이 사회가 아닐까 싶다. 지독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잔인한 사회. 왠지 모르게 그녀들을 미워할 수 없다.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이럼에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멍청이들이 꼭 나타나겠지만.

렉스가 흑인 소녀 둘을 초대한 시점부터 어딘가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는 운동가의 기질이 느껴진다. 정말 진보적이고 마음에 든다. 렉스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어진다. 이런 패기 넘치는 여자에게 벽치기를 당하고 싶다. (?) 물론 그런 여자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나 같은 사람에겐 혐오감을 내비치겠지만.

난쟁이 여인 예타 얘기는 충격적이다. 장애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 묘사는 끔찍하다.

문득,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어딘가 이 작품과 통하는 구석이 있다. 시대적 배경이나 주제 등이 흡사해 보인다. 렉스 너란 여자는. 렉스는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다. 진정 강인하고 진취적인 여성이다. 단순히 탈코르셋을 외치면서 위생관념과 자기 관리의 개념을 상실한 부류와는 차원이 다르다.

문득, 폭스파이어의 존재성은 시궁창 같은 이 세상, 그리고 1950년대 배경 즉 저자의 청소년기 시절 꿈꾸던 일종의 희망 같은 유토피아를 표현한 게 아닐까 싶어진다. 저자 그녀가 바라던 소규모 공동체의 모습일까.

여성들끼리 뭉치자는 폭스파이어 내부에서도, 인종차별 문제는 어쩌지 못한다.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그리고 내부에서 분열되는 진보 단체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같은 약자 혹은 소수자라도 그 틀 안에서 서로를 나누고 또다시 차별을 일삼는다.

협박이 동반된 일종의 꽃뱀 같은 짓으로 돈을 벌려는 건 감싸주고 싶지 않다. 그녀들도 돈 앞에선 쉽게 유혹에 빠지고 타락을 자초한다. 한편으론 남성들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돈을 버는 걸지도 모른다는 측은함도 느껴진다. 찜찜한 악의 반복으로 보인다.

서서히 폭스파이어의 붕괴 조짐이 보인다. 현실의 벽 앞에서 이상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어딜 가도 그렇다. 그렇게 어떤 신념을 갖고 탄생된 조직은 스스로 와해되기 일쑤다.

킬러매디의 흔들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어쩌면 그녀들에게 가장 필요했고 또 바랐던 건 사실 정신적, 사회적 빈곤 해결이 아니었을까. , 외로움을 해소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을까.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라는 책이 떠오른다. 신념을 갖고 극단적인 언행과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 개개인은, 사실 그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외로워서 그런 게 아닐까. 나도 그랬고, 태극기 집회니 사회주의 혁명이니 외치는 운동권 상당수도 그래왔듯이 말이다. 이건 정치 성향을 초월한 문제다.

문득, 꽃뱀이 되는 거 외에 다른 방법은 없냐고 그녀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과연 범죄를 저질러 돈을 버는 게 최선의 방법인지 말이다.

렉스의 악의 없는 악행에 대한 주장은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혼란스럽다. 선악의 기준이 모호해진다.

점점 범죄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폭스파이어. 허나 그곳을 벗어나면 갈 곳이 없다. 그게 더 비극이다.

렉스와 켈로그 집안과의 조우는 불길해 보인다. 서로 전혀 다른 이들이 조우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렉스처럼 뼛속까지 하층민 기질을 가진 부류는 중산층 이상의 잘난 이들을 더럽히고 파괴한다. 렉스, 너도 널리고 널린 지독한 하층민이자 타고난 범죄자에 불과해 보인다.

저자가 렉스를 미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부정적인 장면들도 넣은 듯하다. 이런 하층민 부류의 교화를 바라는 상류층도 착각을 버려야 한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을 도우려는 상대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다. 렉스처럼. 어쩌면 폭스파이어의 붕괴는 예고된 걸지도 모른다. 별별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란 언제라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켈로그 씨가 기독교 정신을 연설하며 반공 성향과 더불어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복지를 부정하는 장면은 절로 분노하게 만든다. 복지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공산화를 막기 위한 당근과도 같은 정책이거늘. 비스마르크가 일찍이 깨닫고 시작한 사회보험 제도의 의의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지금도 너무나 많다. 우리나라도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자신들에게 선의를 베푸는 켈로그 일가를 기어이 노리는 렉스. 이래서 못 먹고 못 산 연놈들은 잘해줄 필요가 없다. 언제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뒤통수를 칠 준비가 되어 있고 심지어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니까.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층 갈등은 시간이 지나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업보의 반복이다. 미국에서 다시 재발한 흑인 폭동이 자꾸만 떠오른다. 뭐가 옳고 그른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결국 렉스의 납치 후 돈을 뜯는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쿠바에서 발견된 것으로 추측되는 렉스는 기어이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된 걸까. 이대로 렉스의 얘기가 끝나서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정리하자면,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렉스와 폭스파이어를 보고 배워야 할 듯하다. 한편으론 현실의 한계 또한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뇌 어딘가를 때리는 듯한 울림이 느껴진다. 렉스는 내 이상형이기도 했다.

한편으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결말을 비극으로 몰아세우는 듯하다.

많은 생각이 들도록 하는 작품이지만 함부로 말하기 힘들어지게 하는 작품이었다.

이 책을 완독하기를 잘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