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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 아세요?







 1929 다른 남부귀족 출신인 콤프슨 일가의 몰락하는 모습을 그린 문제작 《음향과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를 발표하여 일부 평론가의 주목을 끌었다.
다시 1930 가난한 백인 농부 아내의 죽음을 다룬 《임종의 자리에 누워서 As I Lay Dying, 1931 여대생이 성불구자에게 능욕당하는 사건을 둘러싸고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작품 《성역(聖域) Sanctuary(1931) 발표하여 일반 독자에게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8월의 햇빛 Light in August(1932) 《압살롬, 압살롬 Absalom, Absalom!(1936) 《야성의 종려(棕櫚) The Wild Palms(1939) 《마을》 《무덤의 침입자 Intrudrer in the Dust(1948) 《우화(寓話) A Fable(1954, 퓰리처상 수상) 《읍내(邑內) The Town(1957) 《저택(邸宅) The Mansion(1959), 그리고 유머를 특색으로 하는 《자동차 도둑》(1962, 퓰리처상 수상) 장편소설을 계속해서 발표하였다.
밖에도 중편과 단편도 상당히 써서 《곰 The Bear》을 비롯한 권의 단편집도 펴냈다.
이상의 여러 작품을 통해서 포크너는 미국 남부사회의 변천해온 모습을 연대기적으로 묘사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요크나파토파군(Yoknapatawpha)’이라는 가공적인 지역을 설정하고 곳을 무대로 해서 19세기 초부터 20세기의 1940년대에 걸친 시대적 변천과 남부사회를 형성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한결같이 배덕적(背德的)이며 부도덕한 남부 상류사회의 사회상(社會相) 고발하였다.
이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신뢰와 휴머니즘 역설적 표현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규명하려는 그의 의지의 발현(發現)이라 있다.

그럼 마르셀 프루스트는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 《스왕가() 쪽으로 Du Cô té de chez Swann》는 1911년경에 대체로 완성을 보았으나 출판사를 구하지 못하여 1913년이 되어 가까스로 자비출판되었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하였는데, 1 세계대전의 영향도 있고 해서 2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fleurs》가 발간된 것은 1918년이었다.
이것은 이듬해에 공쿠르상 수상하여 프루스트는 비로소 연래의 꿈이었던 문학적 영광을 차지할 있게 되었다. 그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코르크로 둘러싼 병실 안에서 죽음의 예감과 대결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완성을 위한 수도사와 같은 생활이 계속되었다. 일생과 바꿀 대작을 남겼다는 점에서 프루스트는 작가로서의 영광과 비참을 모두 맛보았다고 있을 것이다. 이상의 작품 외에 2권의 문집, 10 권의 서간집과 미발표 원고가 있다. 

우와 그럼 제임스 조이스는요?









1904, 평생의 반려자인 노라 바나클을 만나, 같은 영어교사 자리를 얻어 함께 유고슬라비아의 폴라로 떠났다. 사람은, 이듬해 이탈리아 북부 트리에스테로 이주, 1915년까지 계속 그곳에 체류했다. 1914, 출판사들과 계속 마찰을 일으켰던 소설집 더블린 사람들』이 탈고한 10 만에 출판되어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탈리아가 1 세계대전에 개입하게 되자 조이스는 트리에스테를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 1919년까지 이곳에 머무르며 자전적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 희곡 망명자들(1918) 출간했다.

1918 헤리엇 위버와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도움으로 < 리틀 리뷰(The Little Review)> 율리시스』가 연재되기 시작하였으나, 검열과 재판, 음란물 판정 시비 등으로 중단되었다. ‘셰익스피어 & 컴퍼니 실비아 비치와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1922 2 2, 파리에서 『율리시스』 영어판이 출간되었다. 그의 생일에 타국에서 출간된 책은 조이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고, 그해에 시작된 피네간의 경야』는 녹내장으로 인한 그의 시력의 악화와 딸의 정신분열증으로 인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완성되어 1939년에 출판되었다. 2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를 거쳐 1940 12월에 취리히로 다시 돌아갔고, 6 뒤인 1941 1 13 58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플룬테른 묘지에 안장되었다.

! 그럼 하루키는요?

야스중독자새끼 입에 담지도 씹련아 맞짱깔 새끼야

그럼 울프는요?


울프는 동안 남성 작가들이 전통적으로 구사해 소설작법에서 벗어나 특유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남성과 여성의 이분된 질서를 뛰어넘어 단순히 여성 해방의 차원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인간 해방의 깊은 문학을 지향했다. 1941 3 28 우즈강()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그래도 나는 쐐기풀 같은 고통을 뽑지않을것이다> <댈러웨이 부인> <세월> <막간(幕間)>, 문예평론집 <일반독자> 있으며, 장문의 수필 <자기만의 >에서는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여성 작가가 겪는 어려움을 다루었다. 

어째서 여성이 작가가 되기란 그토록 어려운가를 역사적 사회적으로 규명한 에세이 <자기만의 > 출간 당시부터 이미 적지않은 반향을 일으켰을 아니라, 1960년대 이후로는 페미니즘의 지침서가 되다시피 하였다. "우리가 모두 일년에 500파운드를 벌고 자기 방을 갖는다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유에 대해 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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