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저널리스트이자 잡지의 편집장으로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당대의 러시아 사회에 대하여 가졌던 여러 가지 입장은 그가 발행했던 잡지의 글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77년의 러시아-터어키전쟁에서 러시아의 터어키 침공과 콘스탄티노플 점령을 적극 지지하였습니다. 그는 그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모태가 된 프랑스에 대한 침공을 선동하기도 하였으며 슬라브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모든 이민족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반유태주의를 철저하게 견지하기도 한 인종주의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과 철학은 흔히 전향자에게서 나타나는 의도적인 딱지떼기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그는 짜르체제에 대하여 시종일관 지지하였고 사회주의와 러시아의 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였음은 물론 매우 악의적인 선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러시아 정교에 근거한 신앙관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은 바로 적그리스도였으며 이방의 민족 또한 반드시 기독교의 신앙으로 정복하고 깨우쳐 주어야 하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던 1881년 2월에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작품은 살아서 보다는 죽어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은 후 진행된 세계가 전쟁의 광기와 인간의 야만적인 행태가 지배하는 역사로 점철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1.2차 세계대전은 인간의 본성과 실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필요로 했고 그런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새롭게 현대적인 의미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후 실존주의 철학의 중심인물이었던 니체와 사르트르는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했으며 앙드레 말로는 전후의 프랑스 지성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소설가로 도스토예프스키를 꼽았습니다. 레닌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하여 “나는 그런 쓰레기를 읽을 시간이 없다”라고 말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반혁명성과 보수성에 근거한 평가라고 보여지지만 그의 뛰어난 작품성과 리얼리즘은 러시아의 문학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넌 정말 레게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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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한테 100번 절해야함
자꾸 전설을 레전드로 깎아내리누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