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빨라진 등교 시간, 모두가 똑같이 입는 교복, 훌쩍 키가 커지고 목소리가 변한 친구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여자 동급생들, 수업이 끝나도 집에 갈 수 없는 방과후 자율학습, 새로이 추가된 빠따나 싸대기와 같은 체벌들, 확연히 어려워지고 복잡해진 교과와 내용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국어 교육이었다.


 초등학교에서는 교과서에 실린 지문을 배우기는 해도(철수와 영희로 익숙한) 진짜 문학작품을 배우는 일은 없었다. 문학 작품이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수업이 끝난 후에 책에서 읽는 것이었다. 중학교부터는 달랐다. 문학 작품이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것이 되었다. 수업 시간 외에 문학을 읽을 수 있는 여유는 조금씩 줄어가기 시작해서,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교 무렵에는 소설이나 시 등의 책을 읽는 것이 사치인 지경에 이르게 된다.(문학을 읽는 것이 시간 낭비라면 애당초 수업시간에는 왜 가르치는지 이해가 안된다.)

 문학은 이제 순수한 취미가 아니라, 일("학업")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수많은 책을 읽어 왔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번도 접해 본 적이 없던 일제감정기의 "저항시인"들의 저항시들을 읽고, 외우고, 그 분석을 외워야 했다. 물론 그러한 작품들이 문학적 가치가 없는 그저 정치적인 맥락의 작품들이라거나 그 작가들의 정신이 위대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사실 교과서 수록 작품 선정 자체는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스스로 좋아서 찾아서 읽었을 작가들은 아니었을 것이다는 말이다.

 

 문제는 작품을 읽는 방식이었다. 내가 앞서서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취미가 아닌 의무적으로 문학을 읽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했는데, 학생 개개인의 작품 선택권에 제한이 가해진다면, 적어도 그 작품을 읽는 방식에 있어서는 그 작품을 최소한 즐길 수 있게는 해 줘야 할 것이다. 중고등학교의 국어 교육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여건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국어에서 문학 작품을 가르치는 방식이란, 작품의 극히 일부를 뚝 떼어서 실어 놓고는 여기에 문단과 "동의어"들에 줄을 그어 가면서 그것들을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너무나도 생소한 방식이었다. 책의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읽던 나로써는 거의 모욕적인 느낌이었다. 그 모욕감이 바보같이 요약이 아닌 전문을 읽으면서 시간 낭비하는 나를 모욕한다는 것인지, 어차피 짤려나갈 글을 열심히 썼을 작가를 모욕한다고 느낀 건지는 불분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욕감은 그럭저럭 감내할만한 것이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어차피 국어 시간에 배우는 작품들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아니었으니까. 작가들에게는 미안하지만서도 어차피 수업시간에 다같이 배우는 작품들은 나의 개인적인 독서 생활과는 관련이 없는, 일종의 비지니스라고 느낀 것이다.


 그러한 비지니스 감각이 깨진 것은 난쏘공을 배울 때였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난쏘공은 내가 스스로 좋아서 찾아서 읽지는 않았을 작품에 속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어봤고, 그 작품에 깊은 감동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러한 작품이 국어 교과서에 올려져, 비지니스가 된 것이었다. 처음에 교과서에서 이 작품을 접했을 때, 반가운 기분이 아니라 굉장히 기분이 더러웠다. 이 작품에 대한 분석을 외우라는 것은 내가 느낀 그 감동이 아니라 다른 어떤 외부 정보를 그 위에 덮어 쓰라는 듯한 강요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교과서의 작품 해석 자체가 내가 느낀 어렴풋한 것들과 완전히 방향이 다르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것을 공식적으로 배우고 그걸로 점수를 평가받으라는 것은 또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이야 졸업한지도 꽤 지났고, 나는 이제 당시와 달리 책을 읽어도 주변에서 눈치를 주거나 하지는 않는 상황에 있다.(시간은 여전히 모자라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 이유 중에, 국어 교육이 그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