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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비밀의 역사(The Secret History)'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야말로 그리스 고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햄든 대학'의 모습이 머릿속에 아련히 그려지는 듯하다.


주인공인 리처드는 미국 서부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의 소도시 플래노에 거주하던 청년이다.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의대로 진학했고, 교양 학점을 채우기 위해 그리스어를 수강했는데 이것이 그의 운명을 바꾸어놓게 된다. 아무래도 의학에 적성이 맞지 않았던 그는 전공 공부를 등한시하고, 고전 그리스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결국 그는 다니던 학교를 관두고, 동부의 버몬트 주에 위치한 햄든 대학의 고전어학과에 들어가게 된다. 이 고전어학과를 이끄는 줄리언은 상당히 괴짜이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을 지녔고,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지닌 뛰어난 노학자이다. 그는 언제나 소수 정예로만 강의를 하며,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대부분의 과목을 그에게서 수강하도록 되어 있다.


고전어학과에 소속된 대학의 학우들 역시 각자 독특한 매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헨리는 이미 여러 개의 언어에 통달한데다 주석서까지 낸 언어학의 달인이고, 프랜시스는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어머니와 새아버지를 가진 게이다. 늘 붙어다니는 찰스와 커밀러는 마치 서로를 거울에 비춘 듯이 닮은 쌍둥이 남매이며, 버니는 쾌활하지만 짖궃은 장난을 곧잘 치는데다 독설가이기도 하다. 이런 특색을 가진 인물들의 공통점은 바로 고전 그리스어를 공부한다는 것이다. 작중 그들의 대화에는 줄곧 그리스 고전이 인용되고,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스어가 섞여 나온다. 그야말로 라틴어를 배우던 중세 길드제 대학의 학생들의 고풍스러운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또한 중세 길드제 대학의 학생들이 방탕함으로 이름이 높았듯, 이들 또한 리처드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기행을 곧잘 벌인다. 그리고 결국 고대 그리스인들의 디오니소스 축제를 재현하여 직접 그 황홀경을 체험하기 위해 모인 모임에서, 그들은 일종의 도취와 광란의 상태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한 농부를 죽이고 만다. 그리고 이 모임에서 따돌려졌던 버니가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버니는 집요하게 이들을 괴롭힌다. 사실 지독한 것은 버니가 이들을 괴롭히는 독설 하나하나는 바로 그들의 아픈 점을 계속해서 찌르고 있다는 것이다. 헨리에게는 집요하게 돈을 뜯어내면서 투정을 부리고, 프랜시스에게는 그가 게이인 점을 빗대어 온갖 동성애에 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찰스의 알콜 의존증을 비꼬아 금주 동맹에 장난질을 치기도 하고, 커밀러에게 찰스와의 근친상간적 관계를 직설적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리처드에게는 리처드가 그의 학우들에게 느끼고 있던 일종의 컴플렉스와, 그로 인한 허세를 곧잘 폭로하여 그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사디스트적인 쾌감을 즐기기도 한다. 마침내 더 참을 수 없게 된 이들은 버니를 절벽에서 떨어뜨려 살해한다.


여러 가지 겹친 우연으로 인해 사건은 결국 미궁 속으로 빠지고, 이들은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제외된다. 그러나 버니를 죽인 사건은 결국 이들의 사이에 금이 가게 만든다. 죄의식과 그들 사이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파탄, 그러한 것들이 연관되어 마침내 이들 고전어과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폭넓은 고전과 언어에 대한 지식이 잘 녹아들어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버몬트 주의 햄든 대학 고전어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금새 빠져들어가게하는 흡입력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학문의 전당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에 진행됨에 따라 농부의 죽음과 버니의 살해, 그리고 이 사건들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사건들과 마침내 파탄에 이르기까지의 전개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추체험할수 있도록 하는 작가의 역량은 상당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청춘의 방황이라기에는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스릴러나 미스테리로 보기에는 너무나 전개가 방만한 이 소설은, 소설의 재미와 유려한 문체라는 점에서는 뛰어난 데 비해서 뭔가 정체성을 찾기 힘든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읽을 때 확 빠져드는 느낌은 있지만, 읽고 나면 '이 소설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것을 찾기가 힘든 느낌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매혹적인 분위기를 구축한 이 소설을 상당히 좋게 평가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