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년 시절 여자에게 귀여움을 받았던 경험은 없지만, 그 당시 도쿄는 사쓰마(지금의 가고시마 현 서부 지역) 사람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던 탓일까, 미소년 취미가 유행하고 있어서 남자아이에게 쫓긴 일은 때때로 있었다.

 

기원절(일본의 개국기념일로 2월 11일) 식후, 미요(유모의 이름)가 마중나와 돌아가려던 도중 금띠의 예복 차림을 한 당당한 풍채의 중위인가 대위 정도로 보이는 군인이 다가와서 '도련님' 하고 나를 불러세우고는,

 

"자, 내가 안아서 데려다 줄게" 

 

라고 하면서 갑자기 안아올려 다리를 건너던 도중에 되돌아와 니혼바시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유모는 깜짝 놀라 뒤에서 바짝 따라왔지만, '곧 돌려줄 테니까 걱정 마라' 라면서 한쪽 팔로 나를 가볍게 안고는 그대로 니혼바시도리를 넘어 고후쿠바시에 다다랐다. 군인이 서서 소변을 보는 사이에, 가까스로 파출소의 순사가 수상히 여겨 말을 걸어 주었기에 도망쳤다. 

 

그 군인은 '노즈 시즈타케'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노즈 장군 일족임이 틀림없다고 아버지가 말한 것은, 사쓰마 출신의 '노즈 시즈오(최종 계급 육군 중장)', '미치쓰라(최종 계급 육군 대장.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함)' 형제를 말한 것일 터이다. 그러나 노즈 시즈타케는, 그 10년 후의 한국 보호조약(을사늑약) 때 육군 중좌(중령)으로 군부 고문이 되어, 일한병합(= 한일합방, 경술국치)에 관여한 인물로, 아마도 다니자키는 그 정도는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실명을 밝혀 옛날의 악행을 폭로한 것일 터이다.

----------------------------


코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