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은 대개 논어부터 시작한다. 논어의 지루하고도 꼰대스런 읊조림이 모두에게 고통을 안겼던 것이 사실이다.

유교성리학은 조선의 이미지와 겹쳐지고 노인과 꼰대들의 '나일리지'와 결합되면서 극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특히나 존대어를 폐지하고 반말쓰기 운동을 펼치는 내게 주자가례와 같은 소리들은 밥상머리를 걷어차게 만들었다.


그리고 논어, 맹자, 대학, 중용, 그리고 도덕경과 장자에 이르기까지.

나는 서양철학을 먼저 공부했던 사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것들이 학술적으로도 허무맹랑하게 여겨졌다.


김훈이 추천하는 책 중에 근사록이 있었다. 김훈은 근사록을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당연한 말들이 써있지만 그 당연한 것들이 가장 무겁고 어려운 것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가 추천한 근사록, 정확히는 아카넷에서 나온 근사록집해를 구매했고 결론적으로는 되팔았다.

당연한 말들도 있었지만 당연하지 않은 말들도 많았다. 논어의 악몽이 떠올랐고 이내 덮어버렸다.


나는 동양철학과는 궁합이 안맞거나 성미 급한 나에게는 그 느릿느릿 도닦듯 수련하는 과정이 존재하지 않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동양철학의 덜떨어짐을 지적하여 반박하고 싶었지만 동양철학을 겉핥기로 배운 자의 어리광에 불과하다 여겨질까 싶어 말을 삼갔다.

공자, 맹자, 순자도 내게 어떤 교훈을 주진 못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내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성스러움이 담긴 교훈을 안겼다.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라." 나는 그의 말을 따랐다.


......


그런 차에 김영건씨의 동양철학에 관한 분석적 비판이란 책을 보게 됐다.

인터넷 서점에서 최신 등록된 책으로 뜨기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직접 읽고 확인하고 싶어 현실 세계의 서점에 갔다.

요새는 미리보기분량에 해당하는 부분만 글을 현란하게 써놓고는 정작 본문에 이르러선 허접하게 쓴 책들이 많아졌기에 직접 보고 싶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고 나는 이것을 그 자리에서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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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에 관한 분석적 비판>, 김영건


저자는 영미분석철학의 전공자다. 분석철학 전공자답게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은 다르다는 그 헛된 명제를 간단히 믿고 넘기지 않는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은 다르다." 이것은 주로 동양철학 관련 종사자들이 하는 말이다. 서양철학의 예리한 칼날, 메스를 피하기 위해서다.

서양철학자들이 동양철학에 대해 무슨 말을 하거나 비판을 하면 그건 동양철학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는 둥, 서양과 동양은 다르다는 둥 회피하기 바쁘다.

이 책에서는 그런 회피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겁먹지 마라 동양철학의 추종자들이여. 마냥 분석철학이라는 도구로 동양철학을 '까대기'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분석철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동양철학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봄으로써 더 나은 해석과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법이다. 너희에게도 좋은 것이다 이 말이다.


"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라는 맹자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가?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동양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들을 조목조목 짚어 단순한 것이라도 수이 넘기지 않고 의문을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에 다 옮겨 적을 수는 없지만 저 주장에 해당하는 맹자의 글귀를 저자는 인용하기도 하면서 분석하기 때문에 동양철학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아주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다.


"인간은 물론 동물적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동물적 측면과는 다른 도덕적 측면도 가지고 있다. 이 도덕적 측면이 바로 인간만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본성이다. 이러한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 맹자의 논증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표현될 수 있다. '우리 인간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이 논증은 타당한가? 과연 전제를 용인한다고 해도 결론이 도출되는가? 결론이 적절하게 도출되기 위해서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그 어떠한 외적 교육과도 상관없이 우리 인간에게 내재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과연 전제는 참인가? 도대체 전제는 어떤 논리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명제인가?"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을 훑어보았을 때 바로 이 지점에 이르러 읽기를 중단하고 곧장 카운터에서 구매한 뒤 집으로 가져와 다시 읽었다.

동양철학을 읽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고 매번 의문을 갖는 것을 직접 다루면서 풀어나가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 교회를 나간 적이 있었고 커서는 미션 스쿨에서 종교 수업을 받기도 했었다.

매번 성경에 관한 공부를 할 때마다 이런 궁금증이 성경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성경에 의하면 신에 의해 세상은 창조 되었고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어 에덴에서 추방 당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진화론은 무엇이고 공룡은 뭔데 그럼? 에덴은 어디고?......"

나는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이미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를 통해 통쾌하게 풀었던 바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동양철학에 대한 일종의 <만들어진 신>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사실 어조는 도킨스에 비해 상당히 누그러져있다.

그리고 최대한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하려고 했다. 도킨스와는 달리 김영건은 그저 학문적 호기심 때문에 이 책을 쓴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김영건은 동양철학 전공은 아니지만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처드 도킨스도 성경 전공은 아니지 않은가?


모든 동양철학의 주제들을 놓고 분석하지 않는다. 서양철학, 분석철학을 통해 분석해 볼만한 굵직한 몇 가지 주제들을 놓고 분석을 가한다.

물론 그것은 중국의 것에 한정하지 않고 '사단칠정'논쟁과 같은 것들도 다루며, 또 책 중반 이후부터는 최근 동양철학 학계의 문제, 동양철학의 글쓰기 문제, 동양철학의 학문적 문제, 한국철학의 문제를 놓고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거창하게 얘긴 했지만 내용 자체는 볼륨이 그리 크기 않고 후루룩 살펴볼 수 있는 수준이며 동서양의 철학을 놓고 비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구체적인 논증을 통해 분석비판한다는 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건 서양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건 한 번쯤은 볼만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좀더 교묘한 사기꾼을 변별해 내는 방식을 예제를 들어 강의하는 것을 본 느낌이랄까.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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