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는 작중인물의 극단성과 힘이넘치는 문장, 뛰어난 심리묘사로 유명한 작가인데 잘만 읽는다면 요즘 소설못지 않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백치>는 다소 이해하기 난해한 단편적인 논변들과 약간 헐렁한 서사적 짜임새때문에 읽기가 좀 힘들었다..

솔직히 1600페이지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쪽이 2배는 더 읽기가 편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가 읽어본 소설 중에서 비슷한 유형을 찾아보기 힘든, 작가로서도 의도적인 기획을 가지고 만든 '백치'미쉬낀 공작이다. 실제로 그는 어렸을 때 백치 증세로 다년간의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간질병 환자이지만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시기(27살)에는 이미 백치 증상을 치료한 정상인이다.(실제 백치는 IQ가 25이하인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작품에서도 그가 백치로 불리는 이유는 통념적인 사회인습을 잘 모르고 여러가지의 처세술과 눈치, 경계심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어른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이렇게 순수한 백치라면 나머지 인물들은 21세기 막장드라마에 내놓아도 결코 밀리지 않을 싸이코 정신병자 같은 인물들이 대다수이다. 나스타시야는 정신이 감수분열 하듯 분열하는 통수(?)의 달인이고 로고진은 방금전에 스스로 자기어머니한테 데려가 축복을 빌어준 의형제를 칼로 살해하려고 하는 싸이코패스이며 아글라야는 가끔씩 공작에게 감명을 받는 경우만 제외하고 거의 놀리고 모욕하기만 하는 요오오오망한 쒸,,,불,,..년이다.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 것이 속물적이고 야만적인 사회무대에서 미쉬낀 같은 순수한 인물이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가. 그가 어떠한 '말없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가 라고 하는데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사실 미쉬낀이 등장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때로 그가 보여주는 고결한 모습과 자기자신의 천박함을 비교해 모욕감을 느끼게 되고 그 결과 오히려 더 모욕적인 언사와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자 하는 충동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쉬낀은 행동력에 있어서는 백치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는다. 작가 스스로가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말한 '활동가는 한계가 있는, 자기 주변에서 무언가를 추구하는 인간이다'라는 말마따나 미쉬낀은 적극성을 갖기에는 너무 현명하고 고결한 대심문관의 그리스도같은 인물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백치의 어디가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가, 그리고 그런 모습이 과연 비루하고 천박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게 된다. 


주변인물들이 미쉬낀에게 감화되는 이유는 진부하게도 그의 '인품'과 '순수함'이다. 작품의 1부에서 아갈르야는 왜 가브릴라에게 퇴짜를 놓는가 바로 그가 자신을 상대로 일종의 계산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순수하게 자기에게 다가왔다면 기꺼이 친구가 되었을 것이라고 그녀는 미쉬낀에게 털어놓는다. 순수함은 논리를 내세우지 않고 그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취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어떠한 기만과 보험도 없고 약하디 약한, 그러나 때로는 고결한 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이런 사람의 연민은 받는 사람들도 기분나빠하지 않는 귀엽고 강력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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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도 미쉬낀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어한 것이 바로 이런것이지 않겠나 싶다. 원래 도스토예프스키는 논리와 합리성보다 믿음과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중요시 여기는 작가이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예프는 소냐의 '헌신'에서 감명을 받고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대심문관 앞에서 아무 논리도 내세우지 않는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논리와 이성으로 삶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작가의 철학이 미쉬낀 공작에서 극대화된다.(심지어 그는 백치이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