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로 시작하는 책
"면도칼의 날을 타넘는 것은 어렵다. 현자들이 말하듯 구원의 길도 그처럼 어렵다."
개미가 면도날을 기어올라 타넘는다고 상상해보자.
그것은 매우 아슬아슬하고 제 몸이 잘릴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미슈킨과 고갱과 싯다르타가 섞인듯한 주인공 래리는 그런 모험에 청춘을 바쳤다.
세속주의가 종교화된 한국에서 보기에 래리는 행복의 옥토를 제발로 떠나 일부러 자갈밭을 걷는 천하의 바보다.
자기 앞에 조그만 면도날이 있으면 훌쩍 뛰어 넘으면 되지 뭐!
그러나 면도날이 베를린 장벽처럼 크고 다른 우회로가 없다면 인간은 '면도날과의 한판승부'를 벌여야만 한다.
자신 앞의 면도날은 실존의 문제를 얼마나 고민하느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이를 작게 보는 사람은 실존문제를 회피한 것뿐이다.
그리고 도망의 댓가는 죽기 전에 반드시 치르게 된다.
동물로 세상의 톱니바퀴로 살덩어리로 살다가 깨달음 없이 죽는 것.
1950년대 비트족의 삼촌뻘 될 래리는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선과 악, 개인과 집단, 순수와 타락 사이에서 인생의 정답을 구하느라 10년 이상을 허비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만의 행복을 찾았고 구원 받았다.
또 다른 주인공 엘리엇은 세속적 기준으로 크게 성공했고, 유럽의 상류층과 어울려 파티와 만찬과 여행으로 시간을 보냈고, 주변사람들을 성실히 도왔고, 독실한 카톨릭 신자고, 자신이 헌당한 성당 안에 거창하게 묻혔다.
그러나 무신론자인 모옴이 보기에 그는 환상(마야)속의 비눗방울 같은 허망한 삶을 살았다.
인간은 죽으면 영혼으로만 남기 때문이고, 전례와 교조적 신앙에 갇힌 종교는 개인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 못했기 때문이다.
단지 해결되었다는 착각만 제공할뿐.
미워할 수 없는 악녀 이사벨.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가 대공황을 겪었다면 이사벨처럼 살았으리라(이름부터가 데이지의 동생쯤 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녀도 자신만의 행복을 찾았다.
그러나 시체와 쓰레기 더미 위에 선 행복일뿐.
그녀는 사는 동안 더 많은 시체와 쓰레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아마 영원히 구원 받지 못할 것이다.
서머셋 모옴이 1944년 70세 나이에 미국에서 쓴 소설이다. 2년 뒤 영화화 되었고(주연은 당대 인기배우 타이론 파워), 1984년에도 영화화 되었다(주연은 무려 빌 머레이!).
모옴의 원숙한 철학과 스토리텔링 실력과 쉽게 잘 읽히면서도 깊은 여운을 만드는 문장력을 느낄 수 있다.
다만 그가 노년에 쓴 탓인지 구성은 좀 느슨하고 허술한 느낌도 든다.
특히 제6장(작중 화자가 독자들한테 읽기 싫으면 건너 뛰라고 너스레 떨기도 한다)은 소설의 자연스런 흐름에 녹아들지 못한 다소 읽기 버거운 철학문답이다(그래도 형이상학 특히 인도철학에 대한 입문용 자료는 될 것이다).
한줄 요약 -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청춘의 필독서 중 하나인 뛰어난 소설
면도날 좋더라... 달과 6펜스도... 인간의 굴레에서 읽어볼테야.
이거 내 인생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