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리스 레싱을 읽어본 적이 없었어

이름만 들어봤지 거의 정보가 없는 작가

근데 전혀 책 안읽는 거 같은 애 방에서 

민음사 전집을 보니까 반갑더라고



그리고 런던 스케치라니

호밀밭의 파수꾼도 아니고 달과 6펜스도 아니고

런던 스케치라니 뭔가 궁금하잖아

방에 책이라곤 딱 그 한 권만 있는데..



그래서 이거 재밌어? 하고 물어보니까

그냥 그래 

하고 말더라 

그럼 왜 읽냐니까 

색이 이쁘대 색이

그리고는 기억이 안나는데 아무튼

그 날이 처음 걔 방에 간 날이었고 



그림 그리는 애였는데 같이 해야할 작업이 있어서

그 이후로 걔 작업실이나 자취방에 몇 번 갔어

어떤 날은 침대에 엎드려서 그걸 읽더라고

거의 뒷부분을 읽고 있길래 나는 다 읽었어? 했는데

음 그런 것 같아 하더라 

그런 것 같은 건 뭐야? 물으니까

이게 단편집인데 읽고 싶은 제목만 읽었대

나는 아 단편집이었구나 그때 알았지



걔 작업실에 가면 이젤이고 컨버스고 다루끼고

완전 난장판이었는데 

하루는 정리를 좀 도와달래서 무거운 그림들 좀 옮겨주고 그랬어

근데 선물이라면서 그리다 만 것 같은 스케치 한 장을 주는 거야

무슨 건물도 있고 사람도 있는데 별 특색은 없는 것 같은..

근데 그와중에 런던 스케치 생각이 나서 웃기더라

그날 둘이 대패삼겹살에 술을 진탕 마시고 

걔네 집에 가서 또 마시다 잤는데 

그 그림을 거기 두고 와버렸네

그리고 그 후에 볼 일이 없었고




지금도 서점에서 지나가다 런던 스케치만 보면 걔 생각이 난다

다른 책도 읽었을까 아직도 그림 그릴까 

참 오묘한 애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