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람들은 내국인-외국인, 남성-여성, 이성애자-동성애자 자신이 속한 집단에 혐오가 이루어지고 있다 주장하거나 상대가 속한 집단을 혐오하는 발언을 하곤 한다. '혐오가 팽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책임을 묻는다는 말은 '혐오가 팽배하게 이루어지는' 이러한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으며 해결해 나가야 '누군가의' 잘못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혐오는 잘못인가? <피로사회> 에서 한병철은 "그러한 질환은 긍정성의 과잉에서 비롯된 병리적 상태라고 있을 것이다.", "폭력은 부정성에서 뿐만 아니라 긍정성에서도 나올 있다." 라고 말하며 현대 사회가 이질성과 타자성의 소멸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구도 속으로 점차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 하나로 혐오를 꼽는 현상도 이러한 맥락으로 파악할 있다. 혐오를 사회 문제 하나로 꼽는 사람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혐오표현은 아주 친한 사람들 사이의 술자리에서 간혹 가다 나올 있는 , 얼굴과 목소리를 감추고 인터넷 사이트에서나 할수 있는 표현이 되었음을 고려하지 못하는 같다. 대부분의 혐오표현은 근래에 금기시되며 금기를 경우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려는 사람들은 당장 '막말 논란' 이라고 네이버에 검색해 보라.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나락으로 떨어진 수십명의 사람들의 목록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긍정성의 폭력' 하나다. 그것은 실체가 보이지 않은 상태로 우리 하나하나를 파고든다는 점에서 적어도 명확히 규명할 있는 '부정성의 폭력' 보다 지독하고 무자비하다.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혐오의 책임?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깎아내리려는 혐오는 자아의 방어기재라고도 있을 것이다. 다름이 존재하고 우리가 각각 우리 자신으로서 남으려는 이상 혐오가 지구상에서 사라질수는 없다. , 우리가 느끼는 타자성이 바로 혐오의 원인이며 책임자라고 있겠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