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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썼지만 본인이 대학원 수업 때 발제문으로 쓴 걸 그냥 가지고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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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위


이야기가 또 옆으로 새는데, 그것은 이 소설이 어디로 나아가도 좋기 때문이고, 이것은 또한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파생하고 이탈해 그것들이 뒤섞이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는 소설이다.


습작생이 소설을 합평 받을 때, 아마도 제일 많이 듣는 얘기는 이 소설은 너무 작위적이다라는 평일 것이다. 작위作爲. 한자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보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라는 뜻이다. 작위적이라는 평을 듣는 습작들은 대체로 그럴 듯하게 보이지 않거나, ‘있을 법하게 보이지 않는 소설들이다. 아마도 소설은 그것이 생겨난 이래로, 소설은 늘 꾸준하게 사실적인 사건’이나 현실적인 사건’을 꾸준히 요구 받았다. 사건이 사실적이거나 현실적이 되려면 당연히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사실주의관점은 어느 작가들과 독자들에게는 진리처럼 받들어졌지만, 반대로 어느 작가들과 독자들에게는 족쇄처럼 여겨졌다. 정영문은 당연히 후자에 속할 것이다. 어떤 작위의 세계의 화자는 그런 전통적인 관점과 정반대에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제는 작위적인 것이 내게는 자연스러웠다. 내가 작위적인 삶을 산 것은 삶의 그 무엇도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그에 따라 삶에 진지할 수 없었고, 삶의 어떤 사실들이 아니라 그 사실들에 대한 생각들에만 관여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이것이 나의 삶의 가장 큰 실질적인 어려움이기도 했다.


화자의 이 서술은 어떤 작위의 세계를 이루는 근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실제로 어떤 작위의 세계에서는 전통적인 소설에서 말하는 사실적인 사건(그러니까 화자나 주인공을 뒤흔들법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거니와,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대체로 그것들은 화자가 그러그러한 사건을 보니 그러그러하게 보였다식으로 서술되면서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로, 그러니까 화자의 사유 속에서만 머무는 채로 끝맺음이 된다.


나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동상을 보려고 그 공원에 갔고, 그 동상 앞에 가 섰다. 벤저민 프랭클린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막상 그의 동상 앞에 서자 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2. 소설


나는 이 도시에 머물면서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려 하지 않았는데 특별히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고 느껴지는 대로 느끼고 어쩔 수 없이 경험되는 대로 경험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작위의 세계의 앞머리는 이것이 샌프란시스코 체류기라고 언급하는 채로 시작한다. 아마 어떤 작위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애매한 부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어떤 작위의 세계는 전통적인 관점이 소설에 요구하는 부분을 거스른다고, 그러니까 사실적인 사건이라든지 그러한 것들이 부재한다고 얘기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어떤 작위의 세계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야기다. 이러한 서사적인 혼돈은 아무래도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징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사실적인 사건이 일어난다손 치더라도, 어찌 됐건 소설은 허구에서 발생하는 장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어떤 작위의 세계샌프란시스코 체류라는 사실에서 발생한 소설이다. 말하자면, 어떤 작위의 세계의 위치는 허구사실중간 어디쯤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작위의 세계의 애매한 건 위치뿐만이 아니다. 어떤 작위의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화자의 서술 특징은 아마도 부정화법일 것이다. 책 곳곳에는 화자가 앞에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부정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나의 취미 중 하나는 기회가 날 때마다 돌맹이를 비탈 아래로 굴러가게 하는 것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 갖게 된 취미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취미가 된 것이다.


의도를 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화자의 이런 던질까 말까 던질까 말까 식의 화법은 소설의 애매한 위치를 더더욱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화자는 허구와 사실 사이에서 기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3. 호보, 히피, 비트 제네레이션


호보의 문화는 미국 문학에서 비중 있는 소재로 잭 케루악과 잭 런던, 유진 오닐과 존 스타인벡 등을 포함한 많은 작가들이 호보로 살았고 호보에 관한 작품을 썼으며, 파썸 벨리와 같은 많은 신조어들을 만들어냈고, 샌프란시스코는 호보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이라 했는데


아무래도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어떤 작위의 세계에는 호보, 히피와 관련된 이야기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 특히나 어떤 작위의 세계에서는 한때 호보나 히피였던 소설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영미 문학에서 비트 제네레이션으로 분류되는 소설가들이다. 비트 제네레이션에 대해 요약하자면 50년대 미국 사회에 등장한 세대로, 기성세대의 사고관에 대항하여 낙천주의적인 사고를 중시했던 이들이다. 거칠게 보면 호보와 히피들도 비트 제네레이션에서 파생됐다고 볼 수 있겠는데, 아무튼 정영문이 그저 소설의 배경이 샌프란시스코여서 이들을 등장시킨 건 아닌 건 분명하다.


아니면 과거에 이 도시로 온 히피들 중 상당수가 맛이 가게 된 후 이곳에 계속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 중에는 혼자 생각에 빠져 입술을 달싹이며 조용히 중얼거리는 자들도 있지만 혼자만의 생각을 큰 소리로 외치는 자들도 꽤 있다.


인용된 부분은 어떤 작위의 세계에서 샌프란시스코의 괴짜들과 맛이 간 자들이라는 챕터에 등장하는 부분이다. 인용된 부분처럼 어떤 작위의 세계에 등장하는 호보들과 히피들 대부분은 맛이 간 괴짜들이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헛소리를 소설 속 화자에게 줄줄 늘어놓거나, 아니면 괴상한 행동을 함으로써 화자의 초점에 들어오게 된다. 이 사회의 낙오자들이 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건 화자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의 발칙한 행동의 이유를 상상하는데 그치고 만다. 앞서 작위 부분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소설을 가득 메우는 것은 화자의 괴상한 상상이다. 그러니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히피들은 자신의 괴상한 생각을 큰소리로 외치는 중이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화자는 자신의 괴상한 상상을 지면에다가 큰 소리로 집필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겠다. 확실한 근거가 없는 추측이 아니라 감상에 불과한 것이지만, 어쩌면 화자는 자신의 처지와 히피, 그리고 호보를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4. 어떤 무위의 세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소설에 대한 복수와, 무와 무의미, 그리고 존재의 근거 없음에 대한 복수뿐이라는 생각을 하며, 처절한 복수를 되새기며, 그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더욱 기이한 생각들을 하며 더욱 기이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샌드위치를 마저 먹었다.


정영문 소설가는 어떤 작위의 세계의 말미에 이 기이하고 엉뚱한 소설에 작의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했다. 이 소설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읽었던 사람들에게 충분한 대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어떤 작위의 세계의 화법이 내내 부정화법으로 가득 차 있는 걸 보면 충분히 그런 작의를 가지고 소설을 썼다는 게 느껴졌다. 앞서 전통적인 관점의 소설에 대해 잠깐 얘기를 했다. 전통적인 관점의 소설은 인과관계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인과관계랑 단순히 시작과 끝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시작과 끝 사이에 유의한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이 있다는 얘기다. 그에 반해 어떤 작위의 세계는 어떠한 인과관계가 없다. 사건이란 것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고, 사건 대시 등장하는 화자의 사유는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호보나 히피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처럼 유의한 지점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말하자면, 어떤 작위의 세계는 무의미로 가득 찬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단서들로 추측을 해보자면, 정영문 작가는 (전통적인) 소설에 복수를 하기 위해 어떤 작위의 세계를 썼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어떤 작위의 세계가 동인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받은 걸 보면 아마 그 복수를 나름 의미 있게(역설적이게도) 본 사람들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5. 부록


손정수 : 따지고 보면 당신 소설도 그렇다. 당신이 썼다는 소설을 읽어본 적은 있어도, 당신이 소설을 쓴다는 얘기를 들었을 뿐, 실제로 소설을 쓰고 있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정영문 : 그래도 소설은 상당히 꾸준히 쓰는 편이다. 그나마 소설은 무엇인가를 지독하게 이야기해도 좋은 거니까.

손정수 : 당신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게 있나.

정영문 : 있다면, 할 말이 없다는 거겠지. 아주 역설적이지만.


인터뷰 출처 : 인터뷰전문웹진 퍼슨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