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책을 읽으면 항상 독후감을 쓴다.

이번 4권은 특히 감동이 남아 독후감을 독붕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 소심하게 고민하다 용기있게 남겨본다 


혼불이라는 역작을 남기고 암으로 돌아가신 최명희 작가의 균형감각은 작품전체에서 대단하다. 양반의 삶과 상민의 삶, 그리고 노비의 삶까지 두루 살핀다. 비하만 하는 것도 칭송만 하는 것도 아닌, 긍정과 부정의 측면을 골고루 입체적으로 다룬다. 이리보면 기쁘고 저리보면 슬프게. 요렇게 보면 착하고 저렇게 보면 못됐게. 이면은 좋고 저면은 나쁘게.


4권의 대부분은 노비의 처절함, 노비의 굴레, 노비의 회한에 집중했다. 읽는 내내 가슴이 시리고 공허해졌다.

태어나보니 노비였고, 노비여서 태어날 자식도 노비일텐데, 그 벗어날 수 없는, 속박하는 억센 굴레속에서도

어루만지는 바람을, 안아주는 태양을, 웃어주는 꽃을, 흙을, 땅을, 물을 맞이하고 바라보고 만지고 밟으며 살아갔을 과거 그들의 비애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심연의 절망감과 치솟는 분노가 뒤섞이여 눈물도 나고 화도 나고 얼굴도 붉어졌다 한숨에 서늘해졌다.

작가의 균형감각이 돋보이는 또 하나의 대목은 4권 후반부에 있다.

3권에서는 청암부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심정을 주로 담고,

4권에서는 청암부인의 죽음에 대한 절차를 주로 담았다.

그리고 4권의 마지막 대여섯장 정도를 장례절차에 대한 인문학적 담론을 시처럼 노래처럼 아름답게 서술했다

형식과 절차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철학적이고 무거운 토론을 이헌의와 이징의의 입을 통해 고혹하고 품격있는 문장으로 전한다. (소소한 일상의 흔해빠진 안부며 소문이며 시시껄렁한 농담의 장면은 묵직한 언어로 보여준다, 작가의 균형감각은 작품전반에 틀이 단단하다)

장례 예식과 의식을 세세하게 기술한 후, 그 예식의 상징성과 유용성까지 짚어주는 작가의 균형감각

형식이 의식을 틀을 잡아주니 마음가짐을 바로하고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형식이 중요하다는 이헌의와

형식이 그 단단하고 융통성없는 고집으로 인간의 삶을 인정을 얼마나 피폐하고 어이없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가를 비웃는 이징의

작가는 이징의의 편에서서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며 슬며시 형식의 허상을 비춘다

작가의 돋보이는 균형감각은 여기서도 볼수 있다.

작가는 밝고 맑음 화창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묘사는 간단 명료하게 처리하고,

어둠 깜깜함 스산함에 대한 묘사는 화려하게 치창하고 풍요로운 표현으로 공을 들인다.

양은 음으로, 음은 양으로 표현하는 필력.

예술이다. 왜 혼불의 표지에 최명희 대하예술소설이라고 인쇄했는지 읽으면 읽을수록 공감한다.가히 예술소설이다.


다소 사족이지만  4권 속의 글자들을 쭉 쫓아 읽어가다보면 과연 "세종"이 성군이었나 하는 회의가 들더라.

그는 백성의 성군이 아니라, 양반의 성군이 아니었나, 역사를 기술하고 재단하는 것도 귀족의 몫이고 지도층의 몫이니 그들의 성군인 세종이 어느새 만백성의 성군으로 오해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한켠 들었다.......성군으로 강요받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4권에서 감명깊었던 구절들 몇개를 옮겨본다 

* 허나 쑥대강이 우거진 더벅수풀 뒤범벅인 정신 가진 사람 보고는 '미쳤다'하고, 앞뒤 문짝 비그러져 빈 바람이 허술하게 드나드는 사람을 보고는 '정신 나갔다'고 하고, 정신 속으로 난 길이 항성 어수선하여 무슨 사지곡직(事之曲直)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사람을 보고는 '정신이 없다'고 하느니. 하지만 애초에 그 사람들이라고 그런 정신을 타고났겠느냐. 물론 그 중에는 남보다 부실한 정신을 타고난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제 정신 간수를 잘못해서 그 모양이 되었을 것이니라. 혹은 방심하고, 혹은 게으르고, 혹은 몰라서, 아니면 헛군데 정신을 다 쏟아 버러셔. 아무리 칠흑 같은 비단머리라라고 단 사흘만 안 빗고 방치해 두면 금방 짚북더미 되는 것이나 같지. (15)

* "날마다 지아비를 바꾸어 개, 도야지와 같으니, 소생은 단지 어미있음을 알고 아비 있음을 알지 못한즉, 아비를 묻지 말고 어미를 따르는 수모(隨母)의 법을 펴야 하겠다."고 세종 13년에 말하여진 것이다.

노비의 신분 세습에 관해서 조선 전기에는, 부모 양쪽 중에 하나만 천인이어도 그 자손은 천인이 된다고 했다가, 한때는 종부법(從父法)이 시행되어 양인과 비(婢)사이의 소생은 양인을 만들기도 했는데, 아버지의 신분을 따라 종의 자식 신분이 바뀌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양반층의 반발로, 얼마 안가서 이 종부법은 폐지되었다.

그리고는 어미의 신분을 자식이 따른다는 종모법(從母法)이 시행되었는데, 말하자면 아무리 사내 종이라 할지라도 만일 양민의 딸과 혼인하면 그들의 소생은 어미의 신분에 따라 양민이 되는 것이었고, 또 계집 종이 아무리 사대부의 자식을 낳았다 할지라도 그는 어미의 신분을 따라 노비가 되는 것이었다. (......) 그러니 나이가 차서 짝을 맞는다는 것은 종이 종을 만나 다시 더 많은 종을 낳는다는 말이나 한가지였다. (32)

* 내가 과연 누구인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야 할 것인지 깨닫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존귀한 존재가 된단 말이다. 역사도 마찬가지야. 이미 지나간 시대, 죽은 자들의 넋두리라고 휴지처럼 구겨서 쓸어내버리면 시간의 배설물, 한 더미 두엄만도 못한 것이 역사고, 그것이 몇천 년 혹은 몇 백 년 전의 이야기일지라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근본이요, 과정이라고 믿는다면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역사지. 그러나, 역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이야. 오늘은 역사가 될 현실이거든 (43)

* 그러다가 조선에 이르러서는 다른 모든 색을 제압하고, 황색이 최상위의 중앙색이 되었다. 드디어 왕의 곤룡포를 비롯하여, 왕가에서 황색과 황지색을 사용하게 되니, 세종 10년 이월에는 나라 안 백성들의 대소남녀를 막론하고 황색 의복 입는 것을 금하였는데, 다시 세종 26년 시월에는 황색에 가까운 색조차도 모두 입지 못하게 금하고는, 그 이듬해 팔월, 또다시 모든 신하 된 자의 황색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니 색은 이미 단순한 물이나 빛깔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법이 그어놓은 금 아래 사는 한, 입으라 한 색을 거역할 수 없고, 입지 말라한 색을 제 마음대로 입을 수는 없는, 이 색에서 저 색으로 넘나들수 없는 경계선을 날 세우고 이는 한세상이었다. (67)

* 날이 저문다. 그렇지 않아도 진종일 낮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던 하늘은, 구름이 가린 볕뉘마저 스러지는 저녁이 되면서, 그 젖은 갈피에 어스름을 머금어 스산하게 어두워지는데. 하늘은 마치 아득히 펼쳐진 전지의 회색 창호지 같았다. 아니면 담묵을 먹인 거대한 화선지라고나 할까. 검은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동짓달의 빈 천공에, 노적봉은 메마른 갈필로 끊어질 듯 허옇게 목메이며 스치어 간 비백의 능선을 긋고 있었다. (161)

* 부인의 임종 소식을 들은 문중의 문장 이헌의는 "사람이 죽어서, 그 죽은 길 보내는 데는 까다롭고 일이 많다."고 하였다. 여러 해 전에 이미 고희를 넘긴 동계어른 이헌의의 노안에 드리워진 스엽은 마치 나무의 실뿌리 처럼 허옇다. "후왕이박래(厚往而薄來)라고, 저 중원의 천자가, 원방의 제후들이 알현을 하러 올 적에 맞어들일 때는, 오는가, 싱겁게 대하고 오히려 돌아갈 때는 선물을 후히 주어 보냈듯이, 사람이 이 세상에 날때는 소식없이 슬쩍 와서 어머니 배나 좀 아프고 응애애 울기나 좀 허면서 오지만, 이승을 떠나갈 때는 모든 사람이 들어서 습렴허고 조문허고 후하게 장사하여 보내는 것이다. 사람은 오래 살았거나 적게 살았거나, 잘한다는 치하보다는 잘못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 것이니, 마음에 멍이 맺히기 쉽지. 그런일을 다 잊어 버리고, 되도록이면 이 진세상의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가볍게 가도록, 잎길이 순탄하게 열리도록 도와주고, 어쩌든지 신향(神鄕)인 일월로 가는 혼백이 개운하게 천연심으로 가도록, 고생했다, 사는 동안에, 위로하고 정중 성대하게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 사람의 도리인즉, 절차를 소홀히 하지말라." (259)

* 여름이면 주렁주렁 무겁게 열어 지붕이나 토담에 지천으로 익어가는 박을 타서 그 반쪽으로 만든 바가지 한 개도, 하루 이틀 아니요, 삼십년을 곁에 두고 아침 저녁 손에 들면 그것이 어찌 한낱 물건이리. 정령이 스민 일이었다. 사람의 기운은 독한 것이라. (304)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