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처음와서 훈련소 때 셰익스피어 4대비극을 읽었다.
그 전까진 하루키소설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고전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어려운 건 질색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비극을 읽으며 어째 이리 재밌는 지 대단히 놀랐다. 거기서 나는 독서를 하지 않을 수 없게 그 매력에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훈련소 때 난 흔히 말하는 폐급이었고, 신체적이나 지능적인 문제라기보단 마인드가 군대에서 싫어하는 부류였다.

나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보이면 눈치보지 않고 하지 않으려했다. 하지않아도 불이익이 없는데 자처해서 눈치보고 빌빌대는 녀석들이 한심했다. 짬찌면 짬찌답게 군인이면 군인답게를 원하고 자발적으로 스스로에게 암시하고 강요하던 다른 이들에겐 심히 거슬리고 반항적으로 비춰졌나보다.

이후 나는 직접적인 무시와 따돌림을 당하며 훈련소 내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거기에서 난 나의 신을 만들어내었고 나의 혼란과 극심한 고통에서 잠시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거짓되었지만 일종의 평화 상태가 되었다.

훈련소 때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가지고 태어난 기질같은 것이 완전히 "악"으로 치부되었고 나 또한 점점 내 기질에 대한 의심 그리고 그 기질을 원망하고 책망하였기 때문이다.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지경까지 도달하여 나는 매일밤 스스로를 가책에 시달리게하며 내 자아, 정신을 죽이다시피 했다. 자존감은 완전히 무너졌다.
ㅡ내 기질, 가치관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남들에 맞춰 정상적인 가치관을 "선"으로 두었고 나를 "악"으로 규정하여 마치 어떤 수도회처럼 스스로를 고문했다.

이후 자대에 배치되고 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러다가 정말 어쩌다가,

데미안이라는 책을 읽게 된다.

나는 거기에서 너무나 큰 빛을 보았다. 위안을 얻고 위로를 받았다.
데미안은 나에게 남들의 가치관이 아닌 내 가치관을 더 믿고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세계(군대 혹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치관에 반기를 들 수 있게 하였고 그것이 절대적인 사실이 아님을 알게해주었다.

데미안을 읽고 난 후 지은 시는 이러하다.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이 쪽은 보지도 않는다
울분을 토한다 그제서야 들어주겠다고 산다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들리지 않는 것인지 이내 고개를 돌린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아우성친다 소원하는 것은 부정으로,
발달린 공포가 나를 절벽으로 몰아넣는다
소년은 뛰어내린다 아름다운 뱀의 춤으로
덧없어 아름답고 소년은 안주하고픈 세상으로 도약했다


그녀가 말을 건넨다 이 쪽은 보지도 않고서
울분을 토한다 배를 갈라보여준다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들리지 않는 것인지 이내 고개를 돌린다
자신의 속삭임이 시야에 떠오른다 갈라진 그녀의 품 속에 잠겨
달콤한 꿈을 꾼다 부모와 여호와의 사랑이 넘치는 세상
아무런 의문이 없는 세상


양들의 젖을 빨고 있는 늑대무리,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늑대 한 마리
늑대는 보고 있다
타오르는 여자, 고개를 숙이고 사자의 심장을 꺼내는 토끼들
떨어져 죽은, 그러나 여전히 춤추고 있는 뱀을
잡아먹는 고슴도치를.


여기서 이렇게 시를 올리는 이유는 이후 밝히도록 하겠다.

삶에의 의지와 희망을 얻은 나는 이후 프로이트를 접하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읽게 되었다.
프로이트 저작의 경우엔 나 자신을 깊게 이해하고 성찰하며 무엇이 해로운지에 대해 세상 일반의 가치관이 아닌 해롭고 해롭지 않은 것으로 따져볼 수 있게 해주었다.
참존가의 경우엔 니체에게 관심이 생기게 해주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과 악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니체에게 생긴 관심으로 니체의 저작물을 읽어보았다.
처음엔 차라투스트라를 읽고 끊임없는 놀람과 공포 속에 흥분에 휩싸였으며 이후 도덕의 계보학을 세 차례 회독하며 우습지만 운명인가 싶은 의심마저 들게 된다.

데미안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두 작품 다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처음 알았을땐 정동에 사로잡혀 가슴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나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되어준 두 책이 니체에게 영향을 받았다니, 그리고 니체의 작품이 정말 엑기스로다가 나의 인생관을 재정립하게 해주었다. 물론 재정립이라기엔 이전부터 나의 가치관이 중요한 삶을 살아왔지만, 군대에서 큰 슬픔과 고통을 겪으며 왜곡된 가치관과 결론이 등장하기 직전이었다. 이로써 나의 신은 사라지게 되었다.

참 신기하다. 니체의 저작을 읽으며 지은 시가 데미안과 맥락을 같이하는 듯 하는 건, 아마 나의 타고난 기질 문제도 있다마는 군대에서 여러 일을 겪으며 도달한 행보가 이렇게 드러난다는 것도 참으로 놀랍다.

데미안을 읽은 직후 지은 시와 맥락이 참 유사하다.



기분 좋은 듯 흔들리는 잔디엔 햇빛이
따스하게 감싸여 있다

정원에 가꾸어둔 샘에서
개구리 한마리를 마주한다

길 잃은 아이처럼 애타게 우는 개구리를
차마 두고 가지 못해 지긋이 바라본다

먹이를 찾았다는 듯 개구린
달라 붙어 청명한 음색과는 달리 음울하고
고약한 체취를 풍겨댄다

호기심에 개구리의 배를
부드럽게 문지르자 기다렸다는 듯
안식에 빠진다

이 잠자는 개구릴 내가 미워하는 것은
사춘기 소녀의 그것과 같다


정동에 사로잡혀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달과,
거기 달라붙은 개구릴 내팽겨치려는 소녀와,

그들은 차라리 그 정원 풍경에 너무나 잘 어울릴
따름입니다


음울한 개구리가 나는 좋다
정원엔 다시 해가 떠오르고
개구리는 단지 증발할 액체 무더길
남겨놓고 사라졌다
나는 네가 좋다.



독서란 참으로 놀랍다. 인생에 너무나 큰 힘을 가져다주며 손 쉽게 마음을 치유한다.

나의 우울함과 극도의 허무주의를 치료해준 프로이트와 니체에게 큰 감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