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초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보고 난 후, 영화를 참 쉽게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냥 작품이 아니라 이렇게나 잘 만드는데 별다른 기교나 꾸밈 없이 참 잘, 쉽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앤드루 포터의 작품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생각났다. 이제 [축복받은 집]도 내게는 그런 작품 중 하나가 됐다.
- 줌파 라히리를 처음 알게 된건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를 들을 때였다. 언젠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상황 자체는 꽤나 선명하다. 740번 혹은 110번 버스를 타고 전쟁 기념관 앞을 지나고 있었고 비가 오는 날 오후였다. 아마 이전까지 김영하 작가가 소개해준 책이나 작가들과는 달리 처음 듣는 작가였기 때문이 아닐까. 줌파 라히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찬사를 받는 작가이며 첫 소설집이 나온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그 이름을 처음 듣는다는 가벼운 충격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을 샀고, 꽤 오랜 후에서야 읽었다.
- 작품집의 원제는 <Interpreter of Maladies>. 한국어본에서는 <질병통역사>로 번역되었다. 작품집 제목으로 <질병통역사>보다는 <축복받은 집>이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출판사의 입김이 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질병통역사>보다는 <축복받은 집>이 더 좋았다. 내가 표제작을 고를 기회가 생겼다 해도 한국어판 제목은 바뀌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다른 작품들은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언지 어렵지 않게 읽히는데 반해 표제작 <축복받은 집>은 그래서 어떻게 된거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하는 의문.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부부가 곳곳에서 성물이 발견되는 '축복받은 집'으로 이사오고, 계속해서 나오는 축복받은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의견차가 너무 크다. 부부는 기본적으로 서로 잘 맞지 않아 보인다. 부모님들끼리 오래된 친구라고는 하나 성장배경도 다르고 성격도 너무 다르다. 작품 말미에서는 그래도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게 아닌가 하다가 결국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든 상태에서 끝이 난다. 작품을 읽어 본 다른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읽으면서도 굉장히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 이에 반해 다른 작품들은 꽤나 명확한 이야기들이다. 아이를 잃고 힘들어 하는 부부라든지 아내와 소통하지 못하고 관광객 부인에게서 출구를 찾는 가이드, 고국을 그리워 하는 결혼이민자, 유부남과의 불륜 관계인 여자 등등. 이들을 다룬 이야기들은 쉽게 읽혔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 중 <질병통역사>와 <일시적인 문제>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소설집의 가장 첫 작품인 <일시적인 문제>는 독자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안내문은 그게 일시적인 문제라고 했다. 작품을 이렇게 시작하면서 결국은 그게 뭐든 간에 그 문제가 결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노골적으로 알려 준다. 유산으로 아이를 잃은 부부 사이는 서로 말하지는 않지만 뭔가 삐걱대고 있다. 남편은 마무리해야할 논문도 내팽게친 채 집에만 박혀 있고 아내는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 늦은 시간에야 집에 들어온다. 서로 유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는 아물 수가 없다. 정전 때문에 문제가 어떻게든 봉합되는가 싶지만 결국은 더 크게 터진다. 정전 마지막 주에 부인은 별거를 원하고 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가 엇나간 남편은 '깜짝선물'로 남겨놨던 것을 끔찍한 기억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폭탄이 터지고 나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 자리를 피하지만 결국은 자리를 같이 한다. 정전이 끝나고 불이 들어오지만 아내가 불을 끄고 부부는 함께 운다. 엄청난 일을 겪고 그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또 서로에게 큰 아픔을 남긴다. 하지만 그 아픔은 결국 함께 보듬어야만 하는 성질의 것이다. 작품집의 가장 첫 작품으로 딱인 소설이 아닐까. 뒤의 이야기들은 어떨지 궁금하게 만들기에 손색이 없었다. <질병통역사> 또한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환자와 의사가 서로 다른 말을 써서 이들을 통역해 주는 일을 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외국어를 통역하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의사조수'에 그쳤다. 아내와는 말이 통하지도 않는데 자기 이야기를 재밌어 하고 아내와 다르게 질병통역사라는 직업에 큰 흥미를 보이는 관광객가족의 부인에게 큰 호감을 느낀다. 마치 처음 본 여자와 눈을 마주치면 곧바로 연애/결혼/자녀계획/노후까지 생각하는 모태솔로 친구처럼, 그녀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 주소를 묻자 주인공은 서로 편지를 주고 받고 결국엔 우정을 넘어서까지 관계가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주소를 적은 쪽지는 바람에 날아가는 것도 모를만큼,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그에게 보인 관심은 실상 그의 기대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고 기대했던 소통은 당연히 실패한다. 실은 처음부터 소통 비슷한 것도 없었던 것이다. 이중의 실패를 겪는 주인공에게 연민이 생기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품은 어리석음에 비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일견 양가적인 감정을 독자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솜씨가 여간하지 않다. 첫 작품집이 이 정도라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나 <섹시>, <센 아주머니의 집> 같은 작품들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소설이었다. 독자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도 있고 결국엔 잘 안 되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야기도 있지만 공통적으로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지는 작품이 없었다. 마지막 작품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은 그 자체로 그녀 아버지의 삶에 대한 오마쥬로 읽혔다. 책 날개에 적힌 작가 설명을 본 독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이해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작품 초반부에서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살짝 이 작품은 너무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물론 기우였다. 작품의 마무리는 이 책을 다시 손에 들만한 이유가 될 정도의 수준이다. 작품 개개의 호감이나 수준에 상관없이 작품들의 배열 순서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궁금해 검색해보니 원서와 같은 순서였다. 작가와 출판사가 논의했는지 어땠는지 궁금증도 생겼다. <비비 할다르의 치료>는 어른 동화처럼 읽혔고 <섹시>는 시종일관 잘 만든 영화를 보듯 읽을 수 있었다. 줌파 라히리의 단편들은 잘 만든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진짜 경비원>이나 <센 아주머니의 집>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과하게 최루성이지도 그렇다고 냉정한 관음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책의 가장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지나서야 <이 책에 쏟아진 찬사>가 나온다. 내용에 크게 자신이 없는 책들이 이런 종류의 말들을 책을 펼치자마자 볼 수 있는 자리에 위치시킨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굉장히 재밌다. 동시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이 책을 다 읽었다면 이 정도 칭찬에 동의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다.
- 줌파 라히리는 이민자 소설이라는 말이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바 있다. 자신이 살아 온 세계를 작품에 쓰기 마련이므로 자기 작품 속 인물들이 인도인인 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녀를 미국인, 인도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작품이 인도인 혹은 인도계 미국인을 그리고 있지만) 인도계 미국인이라는 설명도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여류 작가라는 이름도 줌파 라히리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그녀의 소설을 세계 문학이라고 부른다면 꽤 괜찮은 설명이 될 것 같다. 작품의 재미나 수준에 관계없이 읽고난 후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소설이 있다. 줌파 라히리의 작품들이 그러하다. 허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건 이 정도일 뿐이라는 점이 아쉽게 남는다.
ㅊ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