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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은 뛰어난 역사 소설임과 동시에 뛰어난 문학 작품으로 칭찬을 받는다. 전자에 대한 인상은 조금만 읽어보더라도 뻔히 알 수 있는데, 당대 시대적 흐름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인용하는 격언, 소품, 그리고 장소마다의 분위기 자체가 상당히 세밀하게 전달되는 탓이다. 문학 작품으로선 어떤가 하냐면, 내 경우에는 요상한 구석에서 쿳시와의 동일성을 발견했다. 주인공인 토마스 크롬웰을 늘 '그'라고 호칭한다. 이 노골적인 거리둠이 갖는 의미에 대해선 이미 쿳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몇 번이고 말했던 것 같으니 넘긴다.
그럼 세간의 평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그것과는 동 떨어진 내 생각들을 정리해보자. <울프 홀>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재밌는 글이었다. 글의 재미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 내가 느낀 두 가지의 재미는 '생소한 배경을 어느 정도로 몰입감 있게 전달하느냐'와 '흥미로운 전개를 얼마나 부드럽게 이어나가느냐'였다.
<울프 홀>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헨리 8세가 영국의 왕이던 시절이다. 추기경 울지가 서서히 실각하고, 그의 후계자로서 토마스 크롬웰이 국왕의 신뢰를 휘어잡는 시기. 셰익스피어의 <헨리 8세>를 읽거나 본 사람이라면 이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이나마 잘 알 것이다. 허나, 노골적으로 말해 <헨리 8세>는 희곡이기에 소설의 장점을 전혀 갖지 못한다. 그 배경에 대한 세밀함, 우리가 배경을 받아들이는 분위기 같은 것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헨리 8세>는 일종의 살점 없는 뼈다귀 인체 모형에 가깝다.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그리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인형은 아니다.
반면 <울프 홀>은 그런 점들에서 다르다. 스코틀랜드의 투박함과 아일랜드의 미비함, 꿉꿉한 냄새가 나는 안개 속의 질척질척한 땅, 마녀들이 넘치는 야만적인 땅이라고 유럽인들에게 무시받는 영국을 느낄 수 있다. 앤과 토마스의 대화 가운데, 시골과 도시의 음식을 비교하며 앤은 이런 것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막 붙잡은 들짐승의 피를 그대로 받아 만든 오트밀 푸딩' 같은 표현을 보면 그 시대성과 함께 그 투박함이 드러난다. 반면 '삶은 닭고기를 얇게 저며 레몬 소스와 함께 내온'은 어떤가? 이런 사소한 요소 하나하나가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전개에 대한 이야기인데, 헨리 8세의 시기는 워낙 우여곡절이 많던 시기라, <헨리 8세>가 이미 보여주듯 극적인 사건들을 찾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관건은 이들 중 어떤 것을 갖고 와 조명하고, 어떤 의도로 배치해 어떻게 끊을 것인가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제목 <울프 홀>의 의미가 나온다. '울프 홀'은 작중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곳은 헨리 8세의 세 번째 부인의 본가가 있는 곳인데, <울프 홀>은 세 번째 결혼이 나오지도 않으며, 글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울프 홀로 가겠다고 결심하며 끝난다.
역자 후기에도 언급했듯, 그 울프 홀로 가게 되는 순간까지가 토마스 크롬웰의 인생의 최정점기일 것이다. 이미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토마스로선 토마스 무어를 처형한 뒤로 더 이상 이룰 것도, 받을 것도 없다. 그리고, 기필코 꺾고 싶은 사람도 없다. 그러니 이 글은 크롬웰의 인생에 있어서 시작부터 최전성기까지를 얼추 견적을 낸 뒤, 딱 그 끝나는 지점의 이름을 잡고, 여기까지의 이야기라는 식으로 <울프 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울프 홀>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해석도 있긴 하다. 작중에서 마키아벨리가 자주 언급되고, 토마스 크롬웰이 이탈리아식 인간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듯-이럴 때면, Thomas는 토마스가 아니라 이탈리아식인 토마소로 읽힌다-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이다, 라는 격언에 맞게, 늑대들의 세상이라는 뜻으로 정해진 제목이라고 말이다. 이것 역시 나름 일리 있는 해석이라 생각한다. 작중 인물들의 이해관계와 명분, 예의 따위에 걸친 정치 싸움은 정말 상당히 치열하고, 동시에 상당히 치명적이다. 그 첫번째 예시로서 정치 싸움에서 밀려난 울지가 그 과거의 영광에 비해 처참한 말년을 보내다 죽는 장면이 나온다. 그 뒤로 밀려날 이들도 다르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해석을 차용했을 때 무시해선 안 될 건 이 서로에게 늑대인 인간들이 꼭 권력자들만을 지칭하는 건 아니란 점이다. 작중의 인물들은 꼭 주요 인물이 아니더라도 상당히 세밀하게-사실, 독자의 주의력을 극단적으로 흐릴 정도로 세밀하게-묘사된다. 악기를 연주하는 하인 소년조차도 나름의 인격을 가진 인물로서, 그가 토마스를 보며 느꼈던 '살인이라도 했을 법한 인상'이란 말은 글의 끝까지 토마스를 따라다닌다. 이곳은 똑똑하고 눈치 빠른 늑대들만이 있는 땅이 아니라, 입이 걸고 거칠고 약간은 둔한 늑대들까지 함께하는 만랑狼의 만랑에 대한 투쟁터라 볼 수 있으리라.
어쨌든, 이 책이 내 생각 이상으로 인상 깊었던 탓에 다른 일로 바빠 미처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동 작가의 <혁명 극장>이 상당히 아쉬워졌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빌려보든, 사서 보든 하지 않을까 싶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일단은, 서평단으로 당첨된 켄 리우의 신작 단편집을 보는 게 더 우선일 듯하다.
토마스 크롬웰을 지략가였는데 우리가 아는 그 크롬웰은 왜 영국서 병신 취급이나 당하는 무능력자였는지 몰라. 정치적 이유로 토마스 무어 사형 시킬 수밖에 없었던 장면은 읽은 지 꽤 지난 여태까지도 잊혀지지 않음. 혁명극장도 가능하면 읽기를 추천한다. 영국인이 쓴 프랑스 혁명사라는 점에서는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같이 읽으면 더더더 굿이었음.
토마스 모어. 토마스 무어는 누구? 힐러리 맨틀이야 논쟁적으로 써야하니까 빌런인 토마스 크롬웰을 미화시키고 덕성과 지성을 겸비한 토마스 모어를 교만스런 속물로 그렸다지만 토마스 모어의 성까지 바꿀 필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