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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유대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1년 가량 수용소 생활을 겪고 가까스로 생존한다.


연합군이 수용소를 해방 시켰지만 바로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오지 못하고 1년 가까이 유럽 각지를 떠돌게 된다.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일은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로부터 15년 후, 유럽을 떠돌던 기억을 다룬 '휴전' 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둘다 아주 잘 쓴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의 에세이들과 더욱 대비된다. 과유불급. 최근에 나온 에세이들 중 나의 시선으로 봤을 때 지나친 에세이들이 많았다. (전부는 아니지만)


조그마한 비커에 폭포수처럼 감정을 쏟아 붓고 억지스런 공감을 유도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감정적인 공감이 좀 부족한 편이긴 하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의 에세이가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글은 격렬하게 감정이 폭발하지 않는다.


본업인 화학자답게 마치 맑게 정제한 시약을 정량에 맞추어 스포이드로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는 듯했다. 내 마음속 작은 감정그릇이 넘친적이 없었다.


문장 역시 늘어지지 않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용액의 기포처럼 톡톡 튀어나오는 센스 있는 비유가 내 눈을 즐겁게 했다.


무엇보다 레비가 흔치 않은 경험, 의도치 않은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책에서 재미뿐 아니라 삶의 지혜(?)를 찾는 이들에게 즐거운 간접경험이 될 것이다.


흥미로운 인물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리스인 '모르도 나훔'(물론 등장인물 대부분이 그렇듯 가명이다)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깊게 남았다.


차갑지만 배울점도 많고 그의 생각에 공감한 부분도 많았던 인물이었다. 물론 내가 그처럼 살진 않겠지만.


나는 체호프의 작품들을 좋아하고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이 아주 잘 쓴 소설이라 생각한다.


억지스런 환상을 주입하지 않고 쓰라린 현실이라도 무심한듯 툭툭 내뱉는 그들의 글이 좋다. 


그렇지만 그들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같은 냉혈한은 아니다.


프리모 레비의 글도 마찬가지다. 프리모 레비만큼 힘든 일을 겪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그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제 3자의 눈으로 관찰하듯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처럼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며 때론 사소한 기쁨을 느끼지만 여러 시련 앞에서 고뇌하고 불안해하고 괴로워한다.


그가 겪은 고통을 알기에 그의 차분한 서술이 가슴 시리게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선뜻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이었다. 허세 가득한 감상문에서 영업글이 되어버렸는데 독붕이들도 레비의 책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