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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일본은 왜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어떤 양상을 보였는가?


첫째, 일본 사회는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갖는 계층 사회이다. 일본은 이 위계 질서를 세계에 적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주도하는 것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회가 계층적으로 조직된 일본이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대동아 공영권.


둘째, 일본은 전쟁 승리의 결정적인 가능성을 정신력에서 찾았다. 군비 지출의 확대 이상으로 그들이 힘썼던 것은 라디오 방송, 방한 체조(겨울 방공호에서 추울 때 난방 대신 하라고 한 체조), 군대용 문답서, 교과서, 가미카제 특공대와 같이 정신력을 강조하는 일이었다.


셋째, 모든 것은 각오의 문제라고 그들은 여겼다. 전투에서 지거나 기습 당해도 이는 충분히 예지되고 계획된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들이 바라던 바였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베네딕트는 일본인은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 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이런 행태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넷째, 일본인들은 전쟁중에도 세계의 시선을 크게 의식했다. 파손된 군함에서 탈출할 때조차 "세계의 눈이 우리들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다."며 의젓하게 구명정으로 갈아타는 모습은 다른 나라의 경우 상상하기 힘든 사고방식이다.


다섯째, 모순되게 보이지만 군국주의자든 평화주의자든 그 신념의 원천이 천황에 있었다. 천황은 일본인에게 있어 절대적인 존재로 전쟁이든 평화든 모든 것은 천황을 위한 것이었다.


여섯째, 일본인은 물질적인 것은 경시했다. 파손된 군함을 구조하고 끝까지 호송한 미군 제독이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고, 위험 예방책을 경멸로 여겨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일이 빈번했다. 극단적으로 이것이 나타난 것이 무항복주의였다. 그러나 막상 포로가 되면 일본인은 매우 협조적이게 된다. 왜냐하면 포로가 돼 명예를 잃은 이상 어차피 그들은 일본인으로서 생명이 끝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베네딕트는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가 일본인들은 어떤 하나의 행동 방침에 모든 것을 걸며, 만일 그것이 실패한 경우 다른 방침을 취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흥미롭지 않은가, 이런 샤머니즘 사회 같았던 일본이 전후 '경제적 동물'로 불릴 만큼 물질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 미시마는 그런 것에 염증을 느껴 결국 유키오를 죽이는 짓거리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