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9bcc427bd8277a16fb3dab004c86b6fe89693c9d204aa623a74bf31d05f41b38e41f5220204f38b6b792b8553a393c73cf5ca0d1376accd4e


순수하게 스토리만 본다면 치정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출세지향적인 능력있는 한 젊은이가 사교계 여인들의 뒤통수를 치면서 출세하려다가 발목 잡혀 사형당하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식으로 요약하자면 기존의 고전이란 것들 중 살아남을 작품은 몇 없을 것이다.


<적과 흑>이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쥘리앵 소렐이 당대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대표할 수 있는 '문제적 개인'이었기 때문이다.

L.골드만의 발생론적 구조주의에서 문학의 주인공은 현실 계급의 잠재의식의 최대치를 표현하는 존재라고 했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김형식 일제강점기 조선의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존재였다면,

쥘리엥 소렐은 왕정복고기 프랑스의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파리의 젊은이들은 이미 나폴레옹을 목도했다. 그들에게 나폴레옹은 '가능성'이었다.

젠체하며 절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형식과 위신만을 추구하는 파리 사교계의 허례허식, 쥘리앵은 겉으로는 예의를 차리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모든 것을 경멸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경멸하는 것은 단순한 권력층, 기득권층이 아니다. 그 아래에서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피지배층의 정신도 경멸한다. 그렇기에 쥘리앵의 혐오는 종종 자기자신을 향한다. 사회의 틀을 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이다.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사회의 관습과 형식에 충실하다는 점이 그의 이중성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가 출세하는데에 도움을 주는 것은 형식을 갖추는 모습이 아니라 그 형식을 깨고 나오는 쥘리앵 자신의 본성(즉 나폴레옹적 본성)이다.

물론 결국에는 그 본성때문에 파멸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스탕달이 당대의 프랑스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드러난다. 그는 쥘리앵의 그런 본성 덕택에 그가 출세 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정제되지 않은 쥘리앵의 본성을 꾸짖기도 한다. 그러다가 쥘리앵이 사형 선고를 받는 후반부에서는 화자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다. 화자는 결정적 순간에서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었다.


나폴레옹을 겪은 왕정복고의 프랑스, 그것은 스탕달에게도 혼란으로 보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가능했던 시기(나폴레옹의 시기)는 이미 지나갔지만 아직 그 광채가 남아있던 시기.

하지만 왕정복고기에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사실이야말로 역사를 파악하는 그의 탁월한 능력을 입증해주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