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한 것.
그런데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세계-내-존재인 인간이
자기 생각 없이 그저 주변에 휩쓸리는 세인Das Man을 극복하고
타인들과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벌리거나 타인을 적극적으로 따라잡으려는
현격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음.
내가 고민하고 있는 건
소비는 단순히 물질 일반이 아닌 특정 허위의식, 가치관, 사상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음.
오늘날 오리지널과 카피의 구별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어떤 허위의식과 가치관도 편의점 음식처럼 간소화되어 소비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무엇으로 자기만의 것을 가진다 한들 프롬의 스노비즘 비판의 사정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음.
하지만 역설적으로 유사 이래 인간 소외가 최악에 다다른 이 시대에 현격성을 갖지 않고는 날로 잃어가는 인간성을 붙들 수 없음.
이 자리에서 말하기엔 제대로 된 결과물이 그다지 없어서 좀 그렇지만
나름 목적을 갖고 독서를 하는 입장에서 수시로 고민하는 사항이다.
굳이 아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들에서 미처 못 본 관점, 방법으로 세계의 빈틈을 메꾸고 싶은데
내 안의 하이데거는 현격성을 지켜내라 하고
내 안의 프롬은 그것이 나의 스노비즘이 아니란 보장이 있느냐고 함.
사실 이미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아는데
독갤은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 좀 있을 것 같아서 징징대봄
그런데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세계-내-존재인 인간이
자기 생각 없이 그저 주변에 휩쓸리는 세인Das Man을 극복하고
타인들과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벌리거나 타인을 적극적으로 따라잡으려는
현격성을 가져야 한다고 했음.
내가 고민하고 있는 건
소비는 단순히 물질 일반이 아닌 특정 허위의식, 가치관, 사상까지 그 대상이 될 수 있음.
오늘날 오리지널과 카피의 구별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어떤 허위의식과 가치관도 편의점 음식처럼 간소화되어 소비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무엇으로 자기만의 것을 가진다 한들 프롬의 스노비즘 비판의 사정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음.
하지만 역설적으로 유사 이래 인간 소외가 최악에 다다른 이 시대에 현격성을 갖지 않고는 날로 잃어가는 인간성을 붙들 수 없음.
이 자리에서 말하기엔 제대로 된 결과물이 그다지 없어서 좀 그렇지만
나름 목적을 갖고 독서를 하는 입장에서 수시로 고민하는 사항이다.
굳이 아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들에서 미처 못 본 관점, 방법으로 세계의 빈틈을 메꾸고 싶은데
내 안의 하이데거는 현격성을 지켜내라 하고
내 안의 프롬은 그것이 나의 스노비즘이 아니란 보장이 있느냐고 함.
사실 이미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아는데
독갤은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 좀 있을 것 같아서 징징대봄
인간은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소비로 인해 인간의 정체성이 규정될 수 있다고 생각함. 어쩌면 소비하는 것이 곧 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고... 다만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분야와 정도는 다 다르겠지. 누군가는 더 많은 화폐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소비해 현실의 재화를 가지려 할 거고,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을 소비해 지혜를 얻고자 할 거고..
내 관점에서 보자면 네가 말한 소비는 너 자신이나 타인의 현상에 대한 의미부여일뿐 실제로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듯 네가 미처 못본 관점이라는 표현은 틀리고 별것 아닌 프레임에 네가 갇혀 있는게 아닐까 내 생각에 너는 남들보다 똑똑한 사람이 아닌대 똑똑하다고 말하는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