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새 없이 매미가 울어대는 여름에 나는 가면을 썼어야 했다. 그 더운 여름에. 아. 사회 생활이란 이런것일까? 하고 나는 통감했다. 이런 무더위속에서 나는 휴가도 가지 못하고, 오로지 한명밖에 안남은 상사의 눈치를 보며 가면을 쓰고 있다. 주변의 수많은 빈 자리들은 마치 내가 사회에서 얼마나 약자의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일의 발단은 여느 기업이 그렇듯 말단직원은 눈치를 보기 바빠 휴가를 신청하지 못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기억도 못할 내 어릴적부터 이랬는지도 모른다.


어릴적부터 나는 항상 눈치를 봐야만 하는 위치였다. 나는 3형제중 둘째로 위의 형, 아래의 남동생 사이에 끼어 항상 부모님 눈치를 보았어야 했다. 물론, 이런 경험이 현재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것에 도움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꿈은, 내가 되고자 했던 사람은 그런 눈치보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 나는 어릴적부터 동화에 나온 용사님이 되고싶었다. 이제는 완전히 사회인이 된 내가 보기엔 우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마음은 신기하게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런 이유는 아마도 어느 꿈을 주는 소설들이 그렇듯이, 그런 꿈을 그리면 조금이라도 닮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상사에게 사근사근하게 아부하고, 누군가에게 눈치를 보며 움직이는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빛나는 마음을 지닌듯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충만하고, 무언가 목표를 향해 온몸을 불사르는, 마치 동화속의 용사처럼. 그러나 현실에 용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동화는 동화일 뿐, 현실로 나오게 되었을 때,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씁쓸하게 적당히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을 맞아 나는 나갈 준비를 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던 찰나에 휴대폰에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너 xx기획 다니지? 나 지금 그 근처인데, 같이 점심이라도 한끼 먹을래?"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의 제안에 나는 흔쾌히 동의했고, 그 친구는 무엇을 하며 지냈었는지 생각했다. 생각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다. 그 친구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모두 추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품은채 약속 장소로 나아갔다.


약속장소는 꽤나 비싼 회전초밥 집이었다. 그는 평소에 식사하는데 돈을 아끼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소득수준에 맞지 않게 펑펑쓰는 편도 아니었기에 이곳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친구는 내가 들어온 것을 눈치채고, 손을 흔들었다. "왔어?" 라며 친근하게 손을 흔드는 친구. 그 친구 옆에는 어린 남성이 한명 있었다. 나는 어림짐작으로 부하직원이겠니 하고 적당히 친구를 마주보는 위치에 앉았다.


"잘 지냈어?" 라는 나의 대화로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친구의 정보에 대해서 요약하자면, 그 친구는 창업을 하여 작은 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어린 남성은 자신이 막 키우기 시작한 부하직원이라고 소개했다. 놀랍게도 그가 데리고 온 부하직원은 누가 들어도 입이 벌어질 만한 학벌과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커리어를 가지고도 그렇게 작은 기업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내심 묻고싶었다. 물론, 나는 친구에게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제로 질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행동에 대해서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친구는 전에 만났을 때, 명문대에 재학하며 누과봐도 엘리트코스를 밟을 것이라고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탄탄대로를 마다하고 어째서 굳이 창업을 한 것인지에 대해 나는 친구에게 물어봐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너는 왜 굳이 창업을 한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야" 라고 친구는 대답했다.

"기업에서는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부품, 혹은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해. 왜냐하면 기업 최고경영자가 그리는 사업의 큰 그림을 위한 장기말들은 그들, 자신의 "말"의 역할만을 정확히 수행해야하기 때문이야."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나는 다른사람의 말이 아닌, 내가 이루고 싶은 그 무언가, 닮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사람의 기업에 들어가지 않아." 라고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그 무언가, 그런 형태의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남이 시키는, 남이 단순히 필요로 하는 형태의사람이 되어서는 안돼. 그래서는 내가 원하는 형태의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형태의 사람이 되잖아?"

"그래서 나는 주변의 시선에 대한 의식을 버리고서야, 그리고 현재의 자신의 모습들을 버려나가고서야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의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되기 위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 라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끝냈다.


친구 옆에 앉았던 어린 부하직원은 그의 말을 듣고 작게 미소짓는 듯 했다. 훌륭한 커리어를 갖고 있던 그런 부하직원을 둘 수 있는 것도, 무언가 물질적으로 줄 수 있는 그 무언가의 재화가 가능케 한 것이 아니라, 저런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그 무언가 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짧은 점심시간이었지만, 그것은 휴가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 내게 생각할 거리와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된다는 것. 세상 모든 사람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멋질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지닌 사람은 너무나도 적다. 마치 어릴적 동화를 읽고 감명을 받은 소년이, 후에 전쟁에서 영웅이 되는 것처럼 멋진일은 없을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시계를 보고,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퇴근시간에 딱 맞추어 사무실을 나가며 나는 오늘 저녁과 같은 시덥잖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래도 분명 그런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