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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만화를 보고 뫼르소를 변호하고 싶어져서 글을 쓴다. 이미 공감할 수 있는 평론이 올라와서 딱히 더 보탤 필요가 없어 졌지만. 하지만 생각한 시간이 아깝다. 허탈해도 그냥 쓰겠다.

"이방인"은 지극히 철학적인 소설이라 생각한다. "카뮈", 그 자신의 "부조리 철학"을 철저히 계산 속에서 작위한 소설같다.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 그 뒤에 가려진 "부조리 철학"에 대한 은유(메타포)로 인해 싱거우면서, 또 반대로 심오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야릇하다. 그래서 "이방인"은 어렵다.

나는 철학적인 것은 모두 어느정도 교훈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노골적인 교훈을 가지고, 작품을 작위적으로 구성했다면, 해석은 아무래도 제한적일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을 축소해서 읽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어떤 독자들은 또 하나의 배심원이 되어 "뫼르소"를 단죄하고 싶어 한다. 당연하다. 살인은 범죄니까. "뫼르소"는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인 것 같다. "뫼르소"는 살인을 저지른 악당이다. 반사회적 정신이상자, 짐승.. 쓰레기! 모두 정당한 비판으로 보인다. 살인은 범죄니까. "뫼르소"는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이미 언급된 "카멜 다우드"의 "뫼르소, 살인사건" 또한 "이방인"의 정당한 패러디다. 그 이름도 없는 아랍인의 어이없이 희생은 어떻게 받아들어야 해? 태양 때문에 방아쇠를 당겼다고? 그게 말이 돼? 그래, 관대하게 첫 방은 실수였다고 치자. 태양 때문에. 하하. 아니, 근데, 왜 첫 방을 쏘고 뜸을 들이다, 또 쏜거지? 왜, 왜! 땅에 쓰러진 시체에다 대고 세 방이나 더 갈긴 거지? 그런데도, 그 문제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 놓고 죽일 의도가 전혀 없었대.. 죽일 의도가 전혀 없었다네.. 너무, 부조리하잖아?
이와 같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살인. 이것이 바로 부조리에 대한 "카뮈"의 극단적이고 과장된 은유다. 이런 작위성 때문에, 작품의 초점은 부조리가 되는 것이고, 우리는 도덕적 판단을 보류하거나 축소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뫼르소, 살인사건"의 "탈식민주의"적 비판은 조금 억지가 있다. 프랑스인이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논외니까. 뫼르소가 죽인 사람이 아랍인이든, 독일인이든,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프랑스인이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뫼르소"를 냉혈한이라고 규탄하고, "이방인"이 범죄를 미화하는 소설이라는 건 소설에 대한과소평가인 것 같다.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부조리한 살인을 저지른 것과 같이, 법정도 단지 "뫼르소"가 터무니없이 정직하다는 이유 때문에 부조리한 사형 선고를 내린다. "뫼르소"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것이다. 나는 여기서 "어빙 코프먼" 의 낙인 이론을 슬쩍 들먹이고 싶다.
"사회는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다양한 역할과 정체성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 "우리가 공적으로 수행하는 그런 역할 정체성(교사, 의사, 간호사, 상인 등)은 사회가 우리에게 규정해주는 것이다 > 하지만 우리가 세간의 심사를 받지 않을 때 사적으로 품는 자아 정체성은 우리의 실제 정체, 본질적 자아다." > "공적 정체성과 사적 자아 사이에 큰 차이가 있으면, 그리고 역할 정체성의 수행 방식에 설득력이 없으면, 우리는 부정적인 평판을 받기 쉽다" > "그런 부정적 평판이 오랫동안 되풀이되면 낙인이 찍힌다"

"카뮈"의 설명으로는 "뫼르소"는 진실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런 진실에 대한 열정은 어디서 온 걸까? 부도덕해 보이기 까지 한 그런 태도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우리가 믿는 도덕의 얄팍함, 단지 시류적인, 위선적인, 그것을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이라는 망치로 깨부셔 산산조각냈고, 그곳에서 현대성과 현대인이 태어났다. 현대인들은 도덕의 공허함에 전율함하면서도, 신성시되는 종교마냥 감히 도덕을 거역하지 못한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딜레마이고, "뫼르소"의 일상이다. 그는 그런 허위의 세상에 탈진해 권태를 늪에 빠진 평범한 우리의 초상이라고 생각된다. 현대 사회에서 진실되려면 불리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라고 "카뮈"가 지적한 이유다..

어쨌든, 이 부조리한 횡설수설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이 소설의 교훈(철학)은 우리가 어느날 "뫼르소"가 될 수 있다는 것. 우리,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인간들이 어느날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살인자, 악당, 반사회적 정신이상자, 짐승.. 쓰레기로 처리될 수 있음을. 그런 으스스한 괴담을 고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단 횡단을 한다. 그런데 뒤에서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이 내가 건너는 것을 보곤, 파란불이라 생각해 뒤따라 오다, 교통 사고로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죽는. 우리가 살해한! 부조리한 불행..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이방인"이라는 의미는는 한 사회에서의 "이방인"이 아닌, 세계 혹은 삶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세계와 끊어져 있다는 감정. 연결되지 않고 홀로 동떨어져 있다는 소외감을 말하는 듯 싶다. 그것이 "이방인"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내가 왜 이런 사이비같은 글을 쓰고 있는 거지? 이러자고 내 소중한 오전을 낭비했다니! 부조리해..

소설 마지막의 "뫼르소"의 각성에 대해선 다른 평론에서도 지적했으니 말하지 않겠다. 이젠 지쳤고, 점심을 먹어야 하므로 이 쯤에서 접겠다. 이 소설이 "프란츠 카프카"나 "조르주 심농"의 영향력 안에서 쓰였다고 하니, 참고해서 읽어 보려면 읽던지 말던지.. 이 건 그냥 "부조리 철학"을 소개한 에세이 "시지프 신화"의 소설 버젼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뫼르소에 공감했기 때문에, 사이코패스에게 공감한 사이코패스로 오해를 받는 부조리를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이방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작품을 두개 추천하고 싶다. "다르덴 형제"의 "언노운 걸"과 "스티븐 달드리"의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야.(원작은 소설) 반대로 "뫼르소"와 비슷한 태도로 비판받고 우리가 그 비판에 공감할 수 있는 건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 같다.

어쩌자고 이런 현학적이고 어수산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