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기준으로
중세의 희곡, 근대의 소설
보통 이렇게 말하는데
소설이라는 장르가 처음에는 잡문 취급받은 이유가
'너무 진짜 같은 가짜'라는 성격 때문에 그러함.
예를 들어, 희곡은 극적 형식이 있기 때문에
그 극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문학 작품으로서 성립조차 하기 힘듬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건을 경험했다고 한다면
그 사건을 희곡으로 그대로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함.
왜냐하면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극적 구조로 다시 한 번 각색해야 하거든.
반면, 소설이라는 장르가 처음 대중들에게 주었던 충격은 무엇이냐면
그냥 생각나는대로 이런 저런 일이 있었다라고 줄줄히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이게 당연히 직접 겪은 일 혹은 실제로 있었던 일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전부 허구라는 것임
왜냐면 소설은 극화시키는 최소한의 장치도 필요 없이
말 그대로 썰 푸는 그대로가 소설이 되거든
그래서 소설이 가장 사실과 가까운 무언가를 다루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던가 무언가를 폭로해야 되는게 아니냐
실제로 소설과 르포문학의 경계가 흐릿했던 시절도 있었고,
소설이 신문이나 역사서의 기능을 대체했던 시절도 있었지
이런 소설의 기능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맑스주의자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 문학의 종언' '소설은 죽었다'를 이야기하고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는 일본 사소설의 전통이
일본 문학의 후진성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던 건데
가라타니 고진이 사소설을 비판한 또다른 이유는
내가 이거 실제로 겪은 일인데?
라는 식으로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진다는거임
그러니까 이게 실제로 그럴법한 풍경이냐
근대적 자아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유리창으로 목격할 법한 풍경이냐
이거에 대한 사회의 비판적 수용과 성찰이 가능함
근데 자기 내면만을 파고드는 사소설은
아 이거 내가 이렇게 느꼈다는데 어쩌라고
이렇게 나오면 결국 근대 소설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거지
내면의 풍경이라는 건 소설적 장치가 어느 지점에서 더해지고 어떻게 현실이 재구성된건지
본인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소비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거야 사회적으로
그래서
'근대 소설은 죽었다'
왜? 근대의 독서대중에게 읽히는 의미가 없다
가라타니 고진에 동의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김봉곤 사건은 굉장히 의미있는 지점을 건드린 것이긴 함
미학적으로나 문학평론적으로
따라서 이 사건이 단순히 누군가를 윤리적으로 단죄하고
우르르 몰려가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떠나서
어떠한 의미있는 담론의 장을 만들어 냈으면 하는 바램인것임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건설적인 바람이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결말은 힘들듯
담론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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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인한테 구라 안치고 허락 맡았으면 걍 실제 카톡 가져다 쓰면 상관없는 것인가? 그걸 과연 개인의 창작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까지 논의가 뻗어갔으면 하는 바램인 것임
내가 등단하면 내 지인들하고 카톡 첨부해야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