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스크롤 해주세요.

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만두이미지

자강두평 - 김영찬 vs 오혜진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a5e5a447b5a2202be30b98bb3aa92a7769283841e767ad218647b5629d3e4aa806861c3c5f95ba23052b3e79dd7f3fd1e8e3ef5d4f3


제목은 이렇게 지었지만 사실 대결한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비교해봤음. 같은 사람에게 추천받았는, 주장하는 바가 정반대란 점이 신기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음.

사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586 남성과 젊은 여성이라는 저자 개인의 위치에 많이 영향 받은 듯싶은데, 일단 최대한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생략하고 두 사람의 논점을 비교하는 것에 집중해 보겠음.

1R - 근대 문학의 죽음
2R - 장편대망론
3R - 82년생 김지영의 상업적 성공


1R. 근대 문학의 죽음

dccon.php?no=62b5df2be09d3ca567b1c5bc12d46b394aa3b1058c6e4d0ca41648b65aec206e965bc50873ece3e76fe0e8b1bdceb477cabdd7febf0165004f082283873d1b61f941be79746cc91439

'소설의 죽음’이란 주제는 이미 18세기 트리스트럼 섄디가 나왔을 때부터 꾸준히 언급되었지만, 국문학에선 주로 2000년대 이후의 문학을 다룰 때 많이 언급한다. 두 평론가의 차이는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현대 문학의 가장 근원적인 전제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영찬 평론가가 근대 문학의 죽음을 받아들인 채로 재생과 부활을 꿈꾸는 입장인 반면에, 오혜진 평론가는 ‘문학의 죽음’이란 주제 자체에 의문을 품으며 새로운 방향성의 현대문학을 기원하는 입장이다. 두 사람의 분석을 다음과 같이 구체화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찬 : 문학은 어차피 시대의 잉여다. 갈수록 물 샐틈없이 공고해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사슬 속에서 비 필수자원으로서 문학의 죽음은 어쩌면 예정된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IMF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문학이다. 더 이상 문학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능동적인 위치에 있지 않고, 현실에 체념한 인간들을 죽 나열하는 것에 그치게 되었다.

오혜진 : 나는 ‘탁월한 문학’은 자기들만 누리고, 후대의 문학을 모두 ‘잔챙이’ 취급해버린 이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선언에 아직까지도 적잖은 앙심을 품고 있다. 현대 문학은 근대 문학에 비해 결코 열등하지 않고,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독자층의 변화에서 온 것이다.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a5e5a447b5a2202be30b98bb3aa92a7769283841e767ad2186479582e83b7fad06261831c230afea365a6a76d4a858949d367204ce384bfa6141315ea539b526445f1

2000년대에 이르러 아저씨 독자가 떠난 빈자리를 20~30대 여성이 차지했다. 그리하여 장편소설, 이야기꾼 위주의 남성적 문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대의 미적 상상력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문학의 퇴보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2R. 장편대망론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a5e5a447b5a2202be30b98bb3aaffc97e9f8f8505a6ca16979a591b573c6b452fdca265410016f30fafa024b12cf9f8e06ffb51

이러한 ‘근대 문학의 죽음’이란 주제 속에서 ‘장편대망론’이 일말의 기대로 떠올랐다. 일단 두 평론가 모두 0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이어진 ‘장편대망론’이 출판하기도 편리하고 다른 미디어와 연계하기도 쉽다는 출판 시스템의 요구와 무관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김영찬은 ‘장편대망론’이 출판 시스템의 요구와 더불어, 포스트 IMF 시대의 종언 가능성으로도 볼 수 있다며 긍정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반면에, 오혜진은 ‘장편대망론’을 7~80년대 이성애자 남성지식인 중심 문학의 재림을 소망하는 586세대의 욕망으로 치부한다.

먼저, 김영찬은 ‘장편대망론’에 적합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김영찬 : 천명관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임철우 ‘황천기담’, 성석제 ‘투명인간’, 이기호 ‘차남들의 세계사’, 권여선 ‘토우의 집’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현대의 장편들이다.

반면, 오혜진은 장편대망론으로 떠오른 작품들을 비판한다.

오혜진 : ‘장편대망론’은 흔히 ‘이야기꾼’ 형태의 작가들과 자주 엮인다. 과거 이문구, 황석영 소설가의 뒤를 잇는 성석제, 천명관 같은 소설가들의 작품을 그 예시로 일컫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거의 이야기꾼 소설은 그동안 민중에 대한 격식없는 애착의 표현으로 이해돼왔지만, 여기에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어떤 구애도 받지 않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비하, 조롱 등이 가능했던 ‘민주화 이전’의 시절에 대한 노스텔지어가 개재해 있다.


정리하자면, 김영찬은 ‘장편대망론’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전망하고, 오혜진은 장편대망론을 586세대의 낡은 공통감각과 시장원리에 지배된 것이라 주장했다.


3R. 82년생 김지영의 상업적 성공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a5e5a447b5a2202be30b98bb3aa92a7769283841e767ad218647f5e2b85e1ff803f61902422a280db0743eaa412ba77aca64a849b45d63b5fc141e2e754f577d4b70436cfd7dbdaa119f76d72b2bdb9dde47c6d73d19be01529d20e

지금까지는 과거 문학과 현대 문학 사이의 단절에 관한 시선 차이를 다루었다면, 여기서부터는 현대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2010년대 한국문학의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는 82년생 김지영에 관한 코멘트를 비교해보자.

김영찬 : 82년생 김지영이 작품의 미적 효과가 미미하여, 오히려 정치적 효과까지 저해했다는 평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지나치게 작품물신주의적인 견해이다. 여성 개인의 몫으로 여겨졌던 돌봄문제의 노동 등 여성차별적 현실을 가시화했다는 공적은 확실히 있는 것 아닌가. (미적 효과가 미미했다는 것에는 김영찬 평론가도 암묵적으로 동의를 한 것 같다.)
다만, 작품에서 재현되는 사건들이 신문기사,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을 얼기설기 꿰맨 것에 불과하다는 명백한 단점이 있다.
더 나아가, 82년생 김지영이 갖는 정치성 역시 한계를 갖는다. 이를테면 구조적 차원, 공적인 실천의 문제에서 다뤄져야 할 사회의 성차별을 개인 심리의 차원으로 용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꽤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 김지영을 화자로 내세우면서, ‘우리의 김지영’에도 속하지 못한 수많은 김지영을 은닉한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오혜진 : 82년생 김지영을 정치적 올바름만이 전부인 소설이라 보는 것은 그저 페미니즘을 적대시하려는 반동적 시도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런 비평적 시도는 페미니즘 소설을 독해하는 데 있어, ‘정치적 올바름’ 외에 어떤 다른 비평적 기준도 고안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비평가의 무능과 게으름이다.


전체적으로 정리해보자면, 김영찬은 현대 문학의 한계를 비판함과 동시에 몇몇 작품들에서 현대 문학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고, 오혜진은 현대 문학의 비판하기만 하는 기존 평론가들을 비판함과 동시에 새로운 문학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어디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보다는, 한국 문단에 이런 의견과 입장이 충돌하고 있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듯하다. 독갤에서 한국 문단 떡밥이 돌 때 끼고 싶으면 두 책을 같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