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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트벵글러의 에세이와 강연록 모음집인 음과 말이란 책의 서평을 쓰려다 보니 클래식 음악 듣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푸르트벵글러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푸르트벵글러의 삶을 쓰려했으나 이미 많은 분들이 푸르트벵글러의 삶의 궤적을 멋지게 써놨고 내가 거기에 합류하긴 글 자체가 너무 빈약하게 쓴다 생각해서 살짝 비틀어 생각해봤다


푸르트벵글러가 활동한 시기는 라디오 실황이 처음으로 시작되고, 음반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리고 그는 31년도에 음악의 생명력이란 제목으로 공연계의 처참한 쇠퇴와 공연활동의 의미에 대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이 에세이를 좀 더 자세하게 알릴 겸, 그가 활동했던 시기의 기계적 음악재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푸르트벵글러의 삶은 많은 분들이 글을 써 놓으셨지만, 이분 글이 좋은 듯 하여 링크를 남기고자 한다.( http://trmsolutions.co.kr/music/Furtwangler/Furtwangler.htm)



먼저 그의 활동기에 발전한 음원 기술과 라디오 실황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푸르트벵글러의 활동기는 1906년부터 1954년이다. 그리고 도이치 그라모폰은 1898년 첫번째 레코딩과 그라모폰(LP이전의 원반모양의 디스크다)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는 시작부터 녹음된 음반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서도 1920~30년대 들어선 라디오 실황이 일상화 되었다.( 1910년에 미국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오페라를 라디오실황으로 내보냈으며, 1923년에 독일에서 최초의 라디오 송출이 됐음을 생각할 때 30년대면 라디오 실황이 일상화 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는 이런 기술의 발전에도 충분히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뤄갔으며, 1940년대에는 이미 최고의 지휘자로 꼽힐 정도였다. 그러나 공연계는 라디오와 음원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나날이 쇠퇴하는 실정이었다.


1931년에 푸르트벵글러는 음악의 생명력이란 에세이에서 대중들이 공연활동의 존재를 부정하려 한단 말을 했다. 그리고 그때에도 이미 공연계는 처참하게 쇠퇴했다고 말을 하였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는 기계적 음악 재생으로 인해 공연계가 위기에 빠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음악 체험 또는 체험 능력의 약화와 쇠퇴를 진정으로 걱정하였다.


그는 기계적 음악 재생이, 그 공연의 모든 것을 담지 못하며, A라는 공연과 A의 공연을 녹음한 음반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음악재생은 공연의 모든 것을 담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음악에서 개별 파트의 상호 관계를 공간적으로 조율하는 원근법적 요소가 음반에서는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소리의 강도도 근본부터 달라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제일 걱정하던 부분은 바로 공연에서 나오는 소리와 음원에서 나오는 소리의 우열관계가 바뀌는 것이다.


'실연 음악이 기계적 음악의 이상과 추세에 순응하다가 이제는 그것을 본받으려는 광경조차 미국을 시작으로 독일에서까지 목격되고 있다. 사실이다. 요즈음 훌륭한 피아노 연주나 오케스트라 공연의 기준은 단 한번밖에 없는 라이브 연주가 아니라 완벽하고, 균형 잡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음반이 되버렸다'


클래식 애호가들 중에도 음반에서 나오는 음을 이상적으로 여기고 이런 음이 공연장에서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는 앞에서 말한 실연 음악의 순응이 공연 쇠퇴를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순응으로 인해 생동감 넘치는 실존을 박탈당했으며, 실존이 없는 공연음악은 쇠퇴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실황음반을 듣는 경우, 가끔씩 너무 빠르거나, 느리거나, 너무 크거나 작은 불분명한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다. 음반을 듣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런 경우는 좋은 소리가 아니며, 좋은 음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에게는 이러한 불분명한 소리들 마저도 공연의 역동성이며, 이러한 역동성을 빼앗기니 공연의 쇠퇴가 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푸르트벵글러와 지금 시대의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공연녹음 기술은 날로 발전하였고, 우리들에게 있어서 음원이란 당연한 것이다 보니 그 안의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되며, 음원의 음악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푸르트벵글러 마저도 음원에 순응한 음악들을 내놓지 않았는가.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난 푸르트벵글러의 슈배르트 9번을 51년에 녹음한 음원으로 접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푸르트벵글러가 1942년에 실황으로 내보낸 음악을 들어보고 놀랐다. 푸르트벵글러 특유의 느린 지휘가 좋았는데 여기서는 좀 빠르게, 그리고 어느 부분은 불분명하여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겐 이런 것이 음악의 역동성이며, 공연장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것 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가 라디오와 음반을 어느정도 한수 낮게 보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라디오와 음반의 중요성을 부정하진 않았다. 라디오와 음반에 맞게 순응하는 음악계를 걱정할 뿐이었다. 그는 생명력 있는 음악이 없어지면 안된다 말하고 싶은 것이다.


푸르트벵글러가 에세이에서 말한 바들을 다 살펴보았다. 이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에세이를 읽으며 음악의 생명력이 무엇인가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으며, 나의 음악을 듣는 기준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현장성이 우선인가 음원이 우선인가


여러분들도 같이 질문을 던져봤음 좋겠다. 각자가 생각하는 음악의 생명성, 역동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푸르트벵글러가 생각한 것과 내가 생각한 것은 어떤 것이 다른가




정돈된 글을 올리려 하지만 언제나 힘들고 잘 안되는 듯 하다. 여전히 난잡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평안한 나날이 되길 바라는 바이다.



참고한 글들


https://artsandculture.google.com/exhibit/RgJi4BWR60ujJQ?hl=ko

http://blog.daum.net/corelliyoon/4350004

https://www1.udel.edu/nero/Radio/readings/classical.html

https://www.radioheritage.net/europe/countries-germany.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