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을 전후로 하여, 식민지 조선에는 붉은 물결이 퍼지기 시작한다.
무정 이래 동경 삼재 중 하나로 불리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해오던 이광수의 농촌 계몽주의에 대해 회의감이 문단에 떠돌았으며, 1920년대 이후 이광수가 친일로 변절하며 소위 양심 있다는 지식인들은 이광수의 주장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오히려 한용운 같이 원래 이광수와 친분이 있던 문인들은 거의 이광수를 “그 새끼” 취급하고 죽은 사람 취급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 대안을 찾고 있던 조선 지식인계에 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레닌의 민족자결주의는 사회주의가 하나의 대안이라는 메세지를 주는데 성공했고, 사회주의는 그렇게 하나의 유행처럼 퍼지게 된다.
오늘날, 혹은 1950 - 198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던 시기와는 전혀 다른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예로, 채만식의 태평천하를 보면, 혐오스런 인간군상 사이에서 유일하게 긍정에 가깝게 그려지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인물이다.
"…착착 깎어 죽일 놈!… 그 놈을 내가 핀지 히여서 백 년 지녁을 살리라고 헐 껄! 백 년 지녁을 살리라고 헐 테여… 오냐 그 놈을 삼천 석 꺼리는 직분히여 줄려구 히였더니, 오―냐, 그 놈 삼천 석 꺼리를 톡톡 팔어서 경찰서으다가, 사회주의 허는 놈 잡어 가두는 경찰서다가 주어 버릴 껄! 으응, 죽일 놈!"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 소리에 가깝습니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쿵쿵 발을 구르면서 마루로 나가고, 꿇어앉았던 윤주사와 종수도 따라 일어섭니다.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 놀 사회주의 부랑당패에, 참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연해 부르짖는 죽일 놈 소리가 차차로 사랑께로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나 몹시 사나운 그 포효가 뒤에 처져 있는 가권들의 귀에 어쩐지 암담한 여운이 스며들어, 가득히 어둔 얼굴들을 면면상고, 말할 바를 잊고 몸둘 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마치 장수의 죽음을 만난 군졸들처럼…….
- 태평천하 마지막 장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니라‘ 중 윤 직원의 대사
이해를 돕기위해 첨언하자면 저 대사를 내뱉는 윤 직원은 작 중 내내 친일파의 면모에 아동성애자의 면모까지 보이는 쓰레기다. 채만식은 윤 직원의 부정적인 면모를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의 사회주의를 끌어온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신경향파 문인들은 기존 문인들을 부르주아 백수 작가들이라 매도하고 비판하며 새로운 문학단체를 설립하기 시작했고, 송영 등의 염군사와 김기진 등의 파스큘라가 통합되어 그 유명한 “카프(「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가 1925년 탄생한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얼굴로 유명세를 탔지만 훗날 친구를 잘못 둬 북한 남로당 숙청 시기에 숙청당할 임화와
비슷한 시기에 숙청당한 김남천이 있었다.
그들의 말을 한번 들어보자.
조선의 시인이 서양 사람이 아니고 한 언어가 외국어가 아닌 이상에는 반다시 조선이 가질 천연적 요소를 고열적으로 부르지져야 할 것이다. 현금에 시라는 것은 인간을 떠나고 사회를 떠나는 초탈의 노래는 아니다. ...따라서 조선이 혁명 문학을 요구한다 하면 시는 그 요구를 더욱 뜨거웁게 불부칠 만한 힘이 잇어야 그 시의 시적 가치가 있는 것이며 따라서 문학적 가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영희, “시와 문학적 가치” 中
한줄 요약하자면 카프의 주장은 문학이 정치 선전 포스터가 되어야한다는 것이였다.
임화의 프로 시를 한 번 보자.
(중략)
그리고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永男[영남]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슳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형님을 잃은 수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늘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永男[영남]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 누이동생
- 임화, “우리 옵바와 화로”
식민지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고 사회주의 혁명에의 결의를 다지는 작품인데, 팔봉 김기진은 이 시를 더러 프로 시의 표준이라고 극찬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문인들의 붓은 일제의 총칼 앞에서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했고 1931년 제 1차 검거 사건 이후 카프 운동은 주춤하게 된다.
일본판 카프라 할만한 나프(고바야시 다키지가 이곳 소속이였다.)에서 활동하다 나중에 국내에서 문인 활동을 시작한 백철이 다 꺼져가는 카프 운동에 풀무질을 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했고 제 2차 검거 사건을 거친 뒤 카프는 1935년 해산한다.
문학이 현실을 바꿀 것을 요구하며 거창하게 시작한 일련의 이 흐름은, 결국 그들이 주장하던 것도 이루지 못했고, 결국 단점으로 지적되는 문학성의 결핍만 남기고 말았다.
그리고 이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신봉 또한 그리 오래가지 못해 1940년대 국민시(일제의 전쟁등 국책 수행을 위해 쓴 시, 서정주의 마쓰이 오장 송가 등 많은 글들이 있다.)의 창작에도 한목 거들게 된것이 사실이다.
카프라는 거대한 하나의 실험은 결국, 현실에 대한 이상의 철저하고 완벽한 패배였다.
저런것도 시라고 해주고 시인되기 참 쉬운 시절이었네
역시 임화는 시보단 평론이지. 평론은 되게 멋있게 잘 쓰는데..
카프...이 병신들아...
쟤네가 뭐 사회주의가 뭔지 제대로 이해나 하고 했겠냐 걍 힙해보이니까 빨아제낀거지
그렇지 뭐. 김지하 아버지도 빨치산 활동 했는데 나중에 김지하가 그러길 맑스 레닌이 한 사람인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