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어릴적 친구였던 한 음악가의 이야기를 회고하려 한다. 어릴적부터 음악에 대한 재능이 돋보여 주목받는 아이였다. 5살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했으며, 9살 때 그는 첫 연주회를 가졌다. 그 시대는 물론 음악 신동이 유행하던 시기여서 신동이 있다는것은 놀랍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목받았던 한 가지 이유는 바로 피아노 레슨이나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성공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어린 신동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이가 계속 들어감에도 계속 터무니 없는 곡을 써내곤 했다. 그래서 그는 "피아니스트 중의 피아니스트"라는 칭호를 받기에 이르렀다. (보통 건반위의 xx라고 짓는 경우가 다수인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피아니스트 중에서 독보적이라는 것을 뜻하니 말이다.) 나는 그와 어린 유년시절을 함께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음악적 성취와 함께 나와 먼 거리로 떨어져 버리게 되었다.


나는 유년시절 이후, 그를 죽기 전까지 겨우 두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와 내가 헤어진 후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그의 공연을 본 후 바로 보러갔을 때였다. 그는 당시에 "피아니스트 중의 피아니스트"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아낌없이 자신의 기교를 드러냈다. 그것들은 프란츠 리스트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고난이도의 테크닉 곡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네가 곡을그렇게 쓰는 이유는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함이냐고 말이다. 나는 그 당시에 그가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여, 마치 리스트처럼 아이돌같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심코 그런 이야기를 입밖에 내뱉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야기에 대해 심히 유감스러워 하며 말했다. 테크닉은 단순히 음악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도구일 뿐이며,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곡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는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음악적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서, 미래 세대의 피아니스트를 위한 작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그의 가치관을 조금 엿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인기, 그리고 명성, 권위를 얻기보다 후세에 자신의 자취를 남기고 싶어하는 듯 했다. 


그것은 마치 나에게 죽음을 피하려 했던 어느 중국의 황제가 떠오르게 했다. 그는 그 황제와 비슷하면서도, 죽음을 피할수 없음을 인정하고 체념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인정했음기에 더더욱 자신의 삶의 자취를 남기고 싶어했다. 어쩌면 어릴적부터 천재로 태어나 누구나 그를 인정했으며, 그는 명성을 얻었는데, 결국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허무감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는 살아있었던 자신의 자취를 남길려고 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와의 두번째 만남을 가졌을 때, 그는 그런 생각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의 아들은 자살하였으며, 그의 아내는 심장발작으로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나는 그와 만나고 난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의 아들의 자살과 아내의 죽음이 그가 허무감을 빠지게 하는데 일조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그는 그런 비극적인 일들을 겪고도 작곡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내가 찾아갔을 당시에 그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의 주제에 의한 파사칼리아, 44개의 변주, 카덴차, 푸가"를 완성한 후였다. 그는 나에게 그 곡을 보여주며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쭉 우울증에 시달렸다. 어차피 사람이란 죽으면 그만인데, 나와 나를 둘러싸는 모든 것들을 짜맞추는 힘겨운 퍼즐맞추기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영웒 남지 못하고 결국엔 사라지고말, 이런 작품들이 이 우주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일지..."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문득 젊은시절에 느꼈던 감상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을 느꼈다. 나는 그 당시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는 이후로 위암으로 사망해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나 또한 남은 생이 그리 길지 않건만, 이제서야 그에 대해 조금 이해했다는 기분이 든다. 궁금했던 그 무엇을 알 것 같아 홀가분하기도 했다.



--------



완전히 소설은 아니고, 실재하는 작곡가를 끌여들여 그의 친구라는 설정으로 상상하며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