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비트겐슈타인 정보글 쓰면 읽어줄 사람 있어?


제목은 "삶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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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은 여기에 있고.


예전 글은 전기를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삶 분석을 다룰거임.


비트겐슈타인의 명언 중에 "유머는 분위기가 아니라 세계관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치 독일에서는 유머가 말살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면, 이는 사람들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그런 어떤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깊고 중요한 어떤 것을 뜻한다." 라는 것이 있는데, 이 명언이 굉장히 중요한 발언이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무엇인지 아주 깊게 요약한다는 게 내용임.


이거도 거의 보름 정도의 기간 동안 쓰게 될 것 같다.


...읽어줄 사람 있어?


그리고, 사람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비트겐슈타인 평전"까지만 읽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음.

비트겐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고,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를 알고 맥락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글 정도가 내가 바라는 것이라서...

그 사람이 내 글을 읽어주고 어떤 피드백을 하는지를 먼저 알고 싶어.



글은 아래에 나온 거 느낌으로 써질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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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머에 대한 이야기

"유머는 분위기가 아니라 세계관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치 독일에서는 유머가 말살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면, 이는 사람들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그런 어떤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깊고 중요한 어떤 것을 뜻한다."


"세계관"이라는 용어를 주목해. 저것이 바로 weltanschauung이야. 지금까지 말해왔던 거야.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적 증명이나, 언어 표현의 분석과 동등한 위치에 유머를 두었어.

유머를 통해 사람들와 소통하는 일은 훨씬 더 깊은 것을 의미한다고 비트겐슈타인은 본 거야.


5.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쿤데라적 해석


https://blog.aladin.co.kr/oren/8564725

이 사람은 정말로 대단한 글을 썼어.

요 글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야. (그리고 마치 뱁새가 황새 따라하다가 다리가 찢어지듯 이 조악한 글을 쓰게 되었지.)


쿤데라는 이렇게 말했지. 니체가 그렇게도 철학을 싫어했음에도 니체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니체를 축소하는 일이라고.

니체를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놓고 변형하는 일, 니체의 유언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을 넣은 것은 우연이 아닐 거야.

이렇게 문학적으로 쓰는 것이 오히려 니체의 뜻을 잇는 길이라고 보는 보는 거지.



이것과 정확하게 같은 방법으로, 비트겐슈타인도 축소되고, 비트겐슈타인의 유언 또한 배신당한 것일지도 몰라.

비트겐슈타인은 수리논리적 방식으로 분석하는 것을 "수학자와 철학자의 사유를 완전히 왜곡시켜 버렸다"는 과격한 표현까지 쓰면서 거부했어.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기존의 본 적 없는 대화록을 만들고, 체계 대신 "치유"를 강조하는 등, 체계를 싫어한 사람이기도 했고.

비트겐슈타인은 기존의 철학적 방법론 자체를 싫어하고 어떤 시점이 지난 이후에는 사다리를 걷어차라는 반철학의 선구자기도 했어.


그런 사람에게 Peter Hacker와 Gordon Baker의 "Understanding and Meaning", Alice Crary와 Rupert Read의 "The New Wittgenstein", 이영철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같은 주석서, 2차 저작, 철학 서적들은 비트겐슈타인을 축소하는 일이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이 진짜 원했던 책은 또다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또다른 칼 크라우스의 "인류의 마지막 날들"이 아니었을까?

비트겐슈타인이 진짜 분석하라고 했던 것은 책 "유머니즘"에서 나왔던 그러한 유머의 분석이 아니었을까?

태초에 행위가 있었고, 행위가 사유에 선행한다면, 똑같이 삶이 철학에 선행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