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럽에서 자신이 구원받을지 알 수 없는 불안이란 곧 실존의 불안이었다. 예정설(믿는 자에게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두고 가톨릭은 세속적 차원, 일상 차원에서 행하는 행위에서 그를 극복할 단서를 찾았고, 그 일환이 면죄부였다. 그게 아니면 구원의 우선순위는 '성서에 씌어진 거룩한 생활만 하는' 수도승 정도였다.
종교개혁은 궁극적으로는 예정설에 대한 관점의 쇄신을 꾀한 것이다. 누군가 "이제 모든 신자가 (가톨릭에서 구원받고자 하는)수도회 같은 생활을 하겠군"이라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베드로의 만인 제사장설을 들고 일어난 루터지만, 루터는 시간이 흐르며 현실 정치에 맞춰 타협하는 반면(가톨릭 예식이나 절차를 묵인한다든지) 칼뱅은 예정설에 대해 가톨릭과는 방향성이 다른 듯 결국 반복되는 '개개인이 일상 행위에서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는' 노선을 택했다.
칼뱅주의는 가톨릭처럼 구원의 단초를 인위적으로 가늠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구원의 전개는 어차피 정해져 있다'며 인간적 차원에서 확인받길 단념하고, 그에 따른 허무를 극복하고자 '그렇다면 적어도 각자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자'는 개인주의가 유대인과 청교도들에게 공통적으로 만연하였다. 이것이 청교도가 건국한 미국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오늘날 자본주의 행동강령의 근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종교개혁은 궁극적으로는 예정설에 대한 관점의 쇄신을 꾀한 것이다. 누군가 "이제 모든 신자가 (가톨릭에서 구원받고자 하는)수도회 같은 생활을 하겠군"이라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베드로의 만인 제사장설을 들고 일어난 루터지만, 루터는 시간이 흐르며 현실 정치에 맞춰 타협하는 반면(가톨릭 예식이나 절차를 묵인한다든지) 칼뱅은 예정설에 대해 가톨릭과는 방향성이 다른 듯 결국 반복되는 '개개인이 일상 행위에서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는' 노선을 택했다.
칼뱅주의는 가톨릭처럼 구원의 단초를 인위적으로 가늠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구원의 전개는 어차피 정해져 있다'며 인간적 차원에서 확인받길 단념하고, 그에 따른 허무를 극복하고자 '그렇다면 적어도 각자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자'는 개인주의가 유대인과 청교도들에게 공통적으로 만연하였다. 이것이 청교도가 건국한 미국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오늘날 자본주의 행동강령의 근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독갤 메모장 ㅎㄷㄷ
어차피 필요한 메모라면 독붕이끼리 현시욕 채워 주는 게 윈윈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