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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라는 개념을 흔히 보곤 했다. 정확히 뭔가, 하고 찾아보니 꽤나 마음에 들었다. 인간의 본질은 사물과는 달리 정해지지 않았으며 '나'라는 존재는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만 구성될 수 있다는 철학의 말씀이, 그리고 그 선택과 자유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그래서 더 파고들어보기 위해 이 책을 선택했다. 실존주의에 관한 단순한 철학서인 줄 알았는데, 그를 바탕으로 한 자기개발과 내면 상담 또한 적절하게 버무린 책이었다. 모든 철학의 목적이 그것이긴 하지만. 보통 자기개발서는 잘 읽지 않지만 이 책은 지적 욕구도 잘 채워주면서 죄책감도 아주 충실하게 자극해 줬다. busy living보다는 busy dying을 선택하고 있는 요즘의 나를 위해...
대표적 실존주의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키르케고르, 도스토옙스키, 사르트르, 니체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이 우연적이고 정해진 본질이 없다고 본다. 백지인 상태로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존재. 인간은 따라서 스스로의 방향성을 선택하고 책임질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삶의 태도를 '진정성' 있는 자세라고 한다. 이렇게 삶과 존재에 대한 진정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기만'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고 실존주의자들은 주장한다. 그런데 이 자기기만이 형태가 한 둘이 아니다.
1. "나는 선택할 수 없다.""나는 선택할 필요가 없다.""나는 선택하지 않았다."는 식의 소극적인 '선택'. 선택의 거부도 하나의 선택이다.
2. 상황에 처한 존재, 상황 속 존재로서의 자신 부정. 즉 지금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면서도 지금 자신의 모습이 아니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3. 타인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이용하려 들며 타인의 자유 및 초월성(상황을 파악하고 극복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4. 과거의 행위나 그 행위에 대한 의미를 인정하려 하지 않음. 과거는 바꿀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영원히 짊어지면서도 극복해 나가야 할 내 안의 '사실성'이다.
5. 4와 반대로 스스로를 아예 '사실성'으로 여겨서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6. 자신의 자유에 따른 행위를 단순히 인정함으로써 (고해나 독백처럼)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기기만에서 벗어나려면 (1) 자신의 행위의 동기와 의도를 인정하고, (2) 무엇 때문에 또는 무엇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가 아닌 이 행위를 선택했다는 걸 인정한 뒤, (3)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변명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는 일이다.
사르트르, 전쟁 일기
알콜 중독자가 알콜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걸 인정할 뿐 아니라 마시지 않겠다고 적극적으로 다짐하듯, 상황 속 존재로서의 자신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선택을 내린 뒤, 한 번 선택을 내리면 변명과 후회 따위는 하지 않고 그 선택 자체가 된 존재로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변명은 그렇다 손 치더라도 후회도 안 하는 것이 가능할까? '최대한' 후회를 하지 않도록 애초에 선택을 할 때 최선을 다해야 함을 유추할 수 있겠다. 악마가 ‘너는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몇 번이고 되살아야 한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을 '신의 축복'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니체의 말처럼...
그러니까 진정한 삶은 우리의 현실을 무언가 다른 것이라고, 힘들이지 않고도 꿈이 실현되고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좋으며 백마 탄 기사가 구하러 달려오고 우리 모두 행복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고 사는 일이다.
어떤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음직한데도 모른다는 것은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고, 어떤 사실을 외면한다는 것은 그 사실이 인식 가능한 것임을 뜻한다. 고의적인 무지 또한 자기기만이며 변명의 여지가 될 수 없다. 솔직히 뜨끔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살아지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이 나의 현실과 인간 현실을 분리하는 대표적인 망상이다. 현실의 내가 매 순간 책임지고 선택해야 함을 나는 항상 망각하려 회피하려 든다.
그러므로 진정성은 근원이라기보다 가치다. 진정성은 실재성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신에게 가치를 부여한다.
사르트르, 전쟁 일기
인간은 그의 자유로 인하여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자유로 인하여 실재성과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선고된 자유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진정성을 통해 그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의미에서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될 수 있다. 물론 이건 그가 불변존재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진정성 또한 그가 영원토록 노력해서 획득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내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책을 추천하면 한편으로는 그들의 무거운 어깨에 짐을 하나 더 얹는 꼴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었다.
글씨 님이쓴거임? 개잘쓰네
헤헤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