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구린 집에 살 때였어

문 열면 바로 차도인 그런 곳


비가 오면 새진 않는데 소리가 엄청 나

어디 천장 한 쪽이 철제여서 철에 물 튕기는 소리..


그래도 비올때마다 나름의 운치가 있었음



사실 알바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도 별로 없었어

그때부터 책을 좀 사모으기 시작했는데

퇴근하고 책 보는 게 유일한 재미였거든


어떤 비 왕창 오는 오늘같은 날

알바하는데 그냥 운치있고 좋더라

근데 내가 집에 없으면 택배를 문앞에 받았거든?


어차피 사람 지나는 곳이 아니라 분실된 적도 없고

대신 받아줄 만한 사람도 없었으니까


근데 갑자기 띵한게

알라딘에 책 시킨 게 생각이 나는 거야

문자보니까 이미 배송완료야



와 시발 좆됐다 책 다 젖었겠다 싶더라

일말의 기대는 택배아저씨가 비 오니까 잘 숨겼어라 싶은 거


존나 두근대는 불길한 마음 안고 퇴근해서 집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냥 문 앞에 대충 팽개치고 가서

완전히 박스가 축축하게 젖은거야


순간 화가 존나 치밀었지

아니 시발 비 오면 좀 안쪽에 넣어주지 장난하나

나는 완전 낙담해서 박스를 들었지

근데 박스가 이미 물에 다 뿔어서

들자 마자 그냥 축 하고 찢어지는 거


근데 안에 있는 책이 멀쩡해

그게 양장이었는데....

속이 너무 멀쩡해 상태가 너무 멀쩡해

살짝 촉촉한게 갓 샤워하고 나온 여자친구처럼

뽀송뽀송 오히려 광채가 나

너무 이상한 거야 말이 되나 박스는 찢어질 정도인데

누가 일부러 장난이라도 친 듯이

그리고 비도 곧 그치고


운치있게 재밌게 읽음


양장이 진짜 튼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