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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근대 소설들은 성장기의 젊은이(대개 남자다)가 어떻게 사회와 조화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아이, 노인, 동성애자, 패배자, 동물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과 대조된다. 프랑코 모레티는 '세상의 이치'에서 근대의 서구가 스스로의 시대를 "젊음"으로 이해했으며, 이것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것이 "젊은 청년 주인공"이라는 말한다.
그렇다면 왜 서구근대는 스스로를 젊은 청년으로 이해했는가? 그것은 젊은이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이라는 속성이 근대와 닮아있기 따문이다. 대부분 사회에서 기득권 세력인 중장년층과 달리 젊은이는 아직 사회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얻지 못한 존재이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으로 이해하며 소설 속에서 온갖 경험(사랑, 우정, 결투, 직업 등등)을 겪으며 점점 성숙해져간다. 주인공의 이러한 경험 혹은 모험이 가능한 것은 오직 자본주의라는 기반 위에서이다. 유럽의 교양소설들(스탕달 발자크 등의 소설)이 귀족과 부르주아 사이의 투쟁, 나폴레옹등을 다루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계층이동, 자아실현이 불가능한 귀족 사회와 달리 나폴레옹, 자본주의는 개인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사회의 대명사로 이해된다.
이 견지에서 바라보면 개츠비의 모험이 의미하는 바가 이해될 것이다. 개츠비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모험을 하는 자이다. 그는 자본주의적 원칙에 따라 당대의 사회에서 성공하고자 한다. 그가 어릴적 자신의 행동방침으로 삼았던 계획표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근면, 성실이라는 원칙과 닮아있다. 주지하다시피, 베버는 근대 청교도 윤리가 자본주의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음을 지적했으며 청교도 윤리의 전범으로 벤자민 프랭클린을 인용한 바 있다.
하지만 유럽의 근대소설과 위대한 개츠비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는데, 유럽 근대 소설 속에서 자본주의는 전통적 가치(귀족적 가치, 휴머니즘적 가치)와 대립되는 타락한 가치로 설정된 반면 위대한 개츠비의 세계, 즉 20세기의 미국에서 자본주의는 소위 "아메리칸 드림"으로 불리며 옳은 가치로 표상된다는 점이다.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 라스티냑이 파리에 대해 가지는 반감과 개츠비가 당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가지는 동경을 비교해보면 쉽사리 대조가 될 것이다.
고리오 영감을 예로 들어 계속 비교를 해보자면, 고리오 영감에서는 서사가 진행될수록 휴머니즘적 가치(고리오 영감)와 자본주의적 가치(보트랭)사이의 대립이 강화되며, 결말부에 라스티냑이 고리오 영감의 무덤 옆에서 파리의 야경을 바라보며 내뱉는 "자, 이제 너와 나의 대결이다!"라는 대사에서 두 가치 사이의 대립은 정점에 달한다. 즉 고리오 영감의 세계에서 진정한 가치와 자본주의적 가치는 결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의 관계이다.
반면 위대한 개츠비에서 진정한 가치와 자본주의적 가치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이름아래 하나로 묶여있다. 즉 여기서는 자본주의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곧 진정한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츠비는 라스티냑이 겪는 양자택일의 딜레마에 처하지 않는다. 문제는 "아메리칸 드림"이 실은 허상이라는 점이다. 개인의 노력으로 자수성가한다는 것은 1920년대의 미국에선 이미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톰 뷰캐넌과 같은 전통적 부자들이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되어 더 이상 신흥부자들이 생겨나는 것이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츠비가 선택하는 것이 벤자민 프랭클린의 성실, 근면의 원칙과는 한참 거리가 먼 마피아와 결탁해 밀주판매하기이다.
따라서 개츠비에선 서사가 진행될수록 진정한 가치와 자본주의적 가치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는게 아니라 진정한 가치의 허상성이 드러난다. 고리오 영감이 끝으로 갈수록 뜨거워지는 소설이라면, 개츠비는 점점 차가워지는 소설이다. 개츠비가 마지막에서 확인하는 것은 자신이 믿었던 가치가 실은 가짜였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화자인 닉 캐러웨이는 위대한 개츠비를 이렇게 정리한다. "이제 그 꿈은 너무 가까이 있어 정말로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이 아느새 그 뒤쪽으로 지나쳐 버린 것을 느끼지 못했다." 개츠비가 가장 그 꿈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때, 데이지와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때,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을때, 그것의 환상성, 가상성이 폭로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자신의 "뒤쪽으로 지나쳐 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개츠비가 어떻게 당대의 사회를 가리키고 있는지에 대해 대답할 수 있다.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미국의(미국인의) 오랜 믿음이 이제는 불가능해진 시대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때는 그저 치정소설인줄 알았던 기억이 나내요 ㅎㅎ
저는 개츠비가 서부개척시대의 사람들처럼 꿈을 꾸는 능력과, 그 꿈을 이루기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그를 위대하게 만든다고 봐요. 비록 동부의 무정함에 삼켜졌을지만요 ㅠ
위대한 개츠비 작품 전체는 얘기할꺼리 많은 작품이야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작품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따졌을 때는 유효한 분석이라고 생각되네
게르마늄//왜 개츠비가 "위대한가"를 묻는다면 당연히 그 순수성이 이유로 꼽히겠지요. 동의합니다.
영문학과에서 이렇게 가르쳐줍니까?
ㅇㅇ//저는 국문학도고 학교 커리큘럼에 프랑코모레티나 개츠비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냥 제가 읽은 책들을 바탕으로 나름의 결론을 내린겁니다.
개츠비는 20세기 초반 저물어가는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순수함을 가진 꿈을 꿀수있는 청년이죠. 하지만 그런 개츠비의 순수함은 이미 고도로 산업화된 동시에 자본주의의 산실이었던 미국 동부에선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합니다.
개츠비의 이러한 "extraordinary gift for hope"이 사그러짐을 통해 서부개척시대의 프런티어정신과 함께 아메리칸 드림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그리고 재즈로 대표되는 물질의 시대가 시작되었죠....라고 영문과에서는 배웁니다 ㅋㅋ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가 반어적인 표현이기도 하다는 분석도 있었는데 흠...인터뤠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