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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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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해야 한다" 라는 말이 정확히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이것이 사람이라는 존재의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마땅한 도리에 대해 논하는 이는 사람이 특정한 상황, 혹은 모든 상황에서 어떠한 상태에 있기를 요구한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만 "이러하다"고만 말할 뿐이므로, "이러해야만 한다"는 건 이미 존재하는 뭔가가 그러하길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국 '이미 존재하는 뭔가'의 활동이란 점에서 그 '이미 주어진 질서'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2. 그런 점에서 순자가 이런 '어떠해야 한다' 라는 규범, 예禮를 '기르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은 탁월한 통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른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잠재하고 있는대로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일 따름이다. 예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덧붙이거나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물과 인간이 본래 주어진 대로 살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3. 순자의 자연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그것이 '서구의 합리주의에 비견되는' 이원론적 관점이라는 것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순자가 사회 규범을 정당화하는 데 있어 자연(천)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에 놀라게 된다. 자연의 질서는 인간의 행동에 선행하여 존재하고, 인간의 존재!기반을 이룬다. 인간의 신체와 기관은 자연에서 온 것이며, 이러한 인간을 존속시키는 음식 같은 양분 역시 자연의 것이다. 인간의 직분은 이 이미 주어진 조건을 지키는 것 뿐이다. 자신의 존재!기반인 자연을 인간이 버린다면 당연히 인간은 존재하지 못 하게 될 것이고, 곧 자신의 직분을 버리게 될 것이다.




4. 그런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필연적으로 자연적 조건을 거스르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인위적인 예가 요청된다. 사람은 무언가를 가지기를 욕구하고, 이 욕구에 한계를 두지 않을 경우 서로의 욕구가 부딪히며 다툼이 일어난다. 이때 성군은 이 다툼으로 인해 인간의 존재!기반이 다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욕구의 한계선을 정하고 각 사회 구성원의 직분을 지정한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만 인간은 자신의 존재!기반인 천을 거스르지 않고, 스스로를 기를 수 있게 된다.




5. 인위적 규범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을 자연적으로 주어진 상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본 학자의 자연관을 '천인분리'라고 할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순자는 맹자보다도 하늘과 인간 간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더 주목하고 면밀하게 통찰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6. 순자 정치철학의 위대한 점은 그것이 자원 배분의 문제를, 당대에 가장 집중적이고 합리적으로 다루었다는 데 있다고 본다. 이것은 사실 고정된 장소에서, 그 장소의 선재하던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살 수밖에 없는 정주문명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직접적인 생산물이 아닌 화폐를 교환하여 생활하며, 마치 자본이 정말로 우리를 먹여살리는 존재!기반이 되는 양 행동하고 있지만, 결국 실재하는 토지와 식품과 물 없이 이 모든 사회적 산물들은 무의미하지 않은가? 개인의 합의와 권리에 집중하는 서양의 근대 정치철학은 이 점에서 좀 빈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7.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만한 점은 이 자원 문제에 대한 해답이 결국 '각각의 직분을 지정하는, 어떤 절대적인 통제자가 될 수밖에 없는가이다. 사실 이것은 너무도 그럴싸해보이는 답이다. 자원 배분의 문제는 특히 현대에 와 그 규모가 광범위해지면서 자발적 규제의 실효성이 보장되기 어려워졌고, 합의를 통한 자정작용이 잘 발휘되지 않는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 국가의 적극적 개입 정책을 옹호하는 데 있어서도 자원 배분의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어쩌면 자원이 유한한 이상 우리는 권위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또 '순자적 관점'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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