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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접한 베르나르의 소설은 웃음이 전부였다. 웃음은 상당히 별로였지만, 주제 자체가 프랑스인의 개그 코드라 나에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여겨서 주제가 다른 소설이라면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역시 들었다. 독갤에서 베르나르의 책을 추천받았는데 상당수가 개미와 나무를 추천해 주었고, 단편보다는 장편을 먼저 읽는게 작가의 의도와 문체를 더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개미를 먼저 읽고자 했으나, 도서관이 상당 기간 휴관이어서 장편을 읽지 못하고 나무를 대신 먼저 읽게 되었다.


 이 단편집에서 단연 돋보인 것은 역시 작가의 상상력이었다. 기계화 된 세상을 혐오하는 기계 인간, 실험을 통해 몸 안의 장기가 투명하게 비치는 피부를 가지게 된 과학자, 어느날 세상의 불빛이 전부 사라졌다고 믿는 맹인, 깨달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육신을 버리고 통 속의 뇌로 살아간 사람 등 작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소설들이 연이어 소개되었고, 그 외에도 외계인의 입장에서 서술한 '야생 인간'의 생태서나 창조주가 각자의 문명을 만들어 인간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등 인간 사회보다 크고 우월한 세계의 시선에서 인간 사회를 서술한 단편들 역시 눈에 띈다. 이렇듯 발상의 전환이나 상상력을 발판삼아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이 단편집의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내가 그 전에 읽었던 베르나르의 소설은 웃음 뿐이므로 비교 대상을 웃음에 두고 서술하자면, 웃음의 기본 전제도 여타 단편집에 수록된 소설들과 큰 차이는 없다. 만약 ~했으면 어땠을까? 혹은 만약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어땠을까?와 같이 베르나르의 상상력을 전제로 삼고 대략적인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만약의 영역밖에 존재하는 등장인물들은 일반적이며 상식적인 반응을 하는 것으로 만약의 영역 안의 인물들과 갈등하고 또 해소되면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사실 나무의 단편들과 웃음의 차이는 단편 소설과 장편 소설의 차이라고 봐도 되는데, 웃음에서 산재된 문제점은 공감하기 어려운 주인공, 문화의 차이 때문에 프랑스식 농담이라는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 줄거리 자체의 완성도 등에서 부족함을 느낄 수 있는데, 단편집에서 묘사되는 주인공들은 감정선이나 과거 행적 등이 간단하게 묘사되면서 자연스럽게 공감하기 힘든 주인공이라는 문제점을 비켜 갈 수 있었고, 이야기의 완성도 역시 글의 길이 자체가 줄어듬에 따라서 흠 잡을 구석이 없어졌다. 아직 단 한개의 장편집만 읽어봤을 뿐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베르나르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은 다른 장편들 역시 단편집에 비해 평가가 떨어지는 것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다음에는 베르나르의 소설 중 가장 평가가 좋은 개미를 읽을 예정인데, 베르나르의 장편 소설에 대한 능력을 바라보는 선입견이 바뀔지 나 스스로도 궁금하다. 개미가 상상 이상으로 괜찮다면 역시 독갤에서 추천받은 파피용이나 타나토노트 읽기를 시도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