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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장르에는 소위 코스믹 호러라고 하는, 여타 호러 세부 장르들과 따로 구별되는 소분류가 있다. 이 '코스믹'이라는 말을 말 그대로 우주적인 공포라고 이해하느냐, 아니면 좀 더 넓은 의미로 봐서 거대한, 항거 가능성이 애초에 없어 보이는 수준의 공포라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이 단편선의 글들이 코스믹 호러로 분류되느냐 되지 않느냐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나는 후자의 의미로 코스믹 호러를 이해하고 있고,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공포는 미지에서부터 온다는 말이 있듯이, 호러 장르에서 작중 인물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는 요소는 다소 모호하다. 다만 이 모호함이 어떤 방식으로 모호하느냐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대부분의 고딕 문학에서 인간과 괴물 사이의 모호함, 또는 괴물의 특성에 대한 모호함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단편선의 작품들은 공포의 원인이 되는 것들의 정체 자체가 모호한 채로 끝난다. 이 모호함은 그것의 존재 자체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그것'이 언제부터 있었고, 언제까지 있을 것인지, 지금 이곳에 있지는 않는지 따위도 확실하지 않다.



<위대한 신, 판>이 좋은 예시가 될 것이다. 공포의 대상으로서 나오는 존재는 옛 그리스 신화의 신, 판이다. 그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늘 존재했지만, 우리는 단지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만 있다. 약간의 조작을 뇌에 가하는 것만으로 그 존재를 목격할 수 있지만, 이를 목도한 여인은 곧바로 공포심으로 인해 미쳐버린다. 경외가 공포에 가까운 형태로 변질되며, 그저 본 모습을 바라본 것만으로 파괴되는 정신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은 그렇게까지 새로운 것은 아니리라. 제우스의 본 모습을 본 세멜레가 그대로 그 위광에 타죽었다는 설화처럼, 이러한 '위대한 것'이 범인을 짓눌러버리는 구도 자체는 흔하다. 하지만 그것이 공포의 요소로 쓰인 건, 아무래도 아서 매켄의 시도가 가장 영향력이 컸다고 생각한다.



<붉은 손>에서도 이런 괴상한 형태의 공포가 다시 등장한다. <위대한 신, 판>과는 달리 이러한 공포는 글 초중반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기존의 호러 소설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며, 글에서 제시된 '미스테리'를 후반부에서 전부 밝혀낼 때는 마치 추리 소설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허나 그런 식으로 읽어나가다 사실상 다 해소되었다고 생각한 혈거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그 혈거인들이 가지고 있던 '고통받는 염소'라는 금 세공품을 보여줬을 때, 작중 인물들은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은 공포를 느끼며 기겁한다. 독자는 작중 인물들이 누구도 제대로 된 말로 표현하지 않는, 형언할 수 없는 모호한 공포를 보며 글이 끝나는 걸 확인한다.



사실, 대부분의 코스믹 호러는 다른 호러 소설들과는 달리 정말로 두려운 호러는 아닐 것이라 늘 생각을 한다. 물론, 언젠가 우리 은하와 부딪힐지도 모를 거대 은하를 두려워하거나, 언젠가 지구를 삼켜버릴 태양을 두려워하거나 하는 식의 우주적 공포가 이따금 실제로 두려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코스믹 호러는 작중 인물과 독자 사이에 일종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중 인물이 느끼는 공포를 독자는 대체로 공감하기 힘들고, 작가가 구체적인 표현을 늘 피하기에 쉬이 상상이 가지도 않는다. 거대한 빌딩을 눈앞에서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빌딩이 제 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어떤 느낌인지 모르듯 말이다. 그런 생각을 이미 갖고 있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으니, 편향적 생각이 굳어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 의견을 한 층 뒷받침해준 것만 같다. 코스믹 호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볼 만한 건덕지가 많다.



또한, 상술했듯 이 공포가 '이미 우리 주위에 있었던 것'이란 점이 코스믹 호러를 토속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귀신과 악령, 악마 등에 대한 호러들과 달리 이런 호러 작품들은 기존의 전설과 신화를 공포의 근간으로 삼도록 한다. 단순히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원래 자신들이 속했던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공포, 자신들과 그것들 사이의 통약불가능성 따위를 슬쩍 보여주는 식이다. 아마 이 점은 황량한 평야나 수풀이 우거진 숲 등의 자연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하던 기존의 문학과도 얽히는 점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담으로, 이 책이 텀블벅에서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실제 내용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이 든다. 상당한 줄간격으로 널찍하게 띄워진 글자들이 자그마한 페이지에 넉넉한 간격을 두고 흩뿌려진 것이 이백 페이지 가량이다. 여기에 만육천원이라, 음. 가격을 낮출 수 없었다면 차라리 단편을 하나라도 더 꼽아서 함께 넣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단편 세 개에 이 가격은 아무래도 좀 양심이 없는 수준인 것 같다. 단편선 2권을 추후 낼 계획이라니, 2권에서만큼은 그 가격에 걸맞는 용량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