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문íëë¤

항우울제 캅토릭스는 우리 몸에서 행복감을 일으키는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켜 우울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 약 덕분에 수 많은 우울증 환자들은 도무지 빠져나올 길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 약에는 두 가지 부작용이 있다. 하나는 구토고, 또 하나는 성욕감퇴와 발기부전이다.


이 사실은 나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던진다. 깊은 슬픔과 상실에서 벗어나는 조건으로 인생이 주는, 어쩌면 유일하다시피한 기쁨을 포기해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주인공 플로랑클로드는 농산부 산하에서 위촉직으로 일하며 거액의 연봉을 받는다, 파리에 넒고 전망이 환히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고, 귀족 가문 출신의 일본인 여자친구를 둔, 남들이 인정할 만한 사회적 성공을 해낸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성공적인 삶 속에서 그는 권태와 우울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자발적 실종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본 그는 사회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길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까지 팔고 자취를 감췄지만, 그럼에도 우울감이 사라지지 않자 결국 정신병원을 찾아가고 의사로 부터 항우줄제 캅토릭스를 처방받는다. 약을 처방받고 기차역으로 간 그는 문득 자신의 옛 애인이었던 카미유를 떠올린다,


이 소설을 읽을 땐 약간 의외라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우엘벡이 이렇게 감상적인 사람이었던가. 나에게 그는 항상 서구 사회에 종말을 약간은 조롱섞인 눈길로 관찰하는 냉소적인 회의주의자로만 여겨졌는데, 이번 작품에 줄곧 등장하는 사랑예찬은 약간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엘벡의 지난 작품들에서 남녀는 줄곧 섹스만 해댈 뿐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긴 힘들었다(소립자 정도를 제외하곤).


하지만 그 사랑도 결국은 실패해버리고 만다는 점에서 역시 우엘벡답다고 생각된다. 플로랑클로드는 끝임없이 카미유를 생각하고 급기야는 카미유가 아들과 단 둘이 사는 집으로 찾아가 아들을 죽이고 카미유와 재회할 생각을 한다. 하지만 플로랑클로드는 끝내 단념하고 파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자살하며 긴 방황을 끝낸다.


플로랑클로드의 삶을 그의 친구 에메릭의 삶과 비교해보면 흥미롭기도 하다. 플로랑클로드고 자발적 실종자가 되고 나서 얼마 후 그는 몇 십년만에 에메릭의 집을 방문하다. 노르망디 지역의 귀족가문 출신의 대지주인 에메릭은 아버지의 땅을 물려받아 그곳에서 전통방식 그대로 소를 기르며 유제품을 만들지만 유제품시장에서 해외에서 싼 값에 들어오는 유제품에 밀려 매년 적자를 본다. 어떻게든 버텨보는 그 였지만 우유 쿼터제와 대형 유통헙체들의 횡포에 견디지 못하고 노르망디 지역의 다른 낙농업자들과 함께 무장시위를 일으킨다. 총을 들고 경찰과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순간 속에서 에메릭은 총구를 자신에게 갖다 대 자살한다.


서구사회는 구강기로후퇴 중이라는 넋두리와 함깨 진행되는 소설을 읽다보니 나 또한 급격히 우울해지고 감상적이게 되버렸다.. 이제 이 사회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불가능을 강하게 느끼며 고독 속에서 죽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항우울제 캅토릭스 덕분에 더 이상 우울감은 느끼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